드로잉을 통한 발견_사이러스 하이스미스 Cyrus Highsmith

 


사이러스 하이스미스(Cyrus Highsmith)는 미국 보스턴에 자리한 타입페이스 개발회사 폰트 뷰로(Font Bureau)에서 신규 서체 개발을 맡고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이다. 2001년 프린트 매거진(Print Magazine) 뉴 비주얼 아티스트 리뷰(New Visual Artist Review)에 소개되며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프렌자(Prensa), 스테인리스(Stainless), 안테나(Antenna) 등의 서체로 이제는 실력과 명성을 함께 지닌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타입페이스 디자인에 있어서 무엇보다 드로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심지어 드로잉을 평생의 열정이라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드로잉을 통해 타입페이스 디자인을 차별화된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덕목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그는 단순히 이렇게 대답한다. “Draw, draw, draw…”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드로잉으로 완성되는 그의 디자인과 디자인 철학을 들어보자. 

취재. 길영화 기자(barry@fontclub.co.kr) 사진제공. Cyrus Highsmith




국내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를 졸업하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폰트 뷰로(Font Bureau, Inc)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그곳에서 신규 타입페이스 개발을 맡고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로,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문자드로잉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주요 개발 타입페이스로는 프렌자(Prensa), 스테인리스(Stainless), 안테나(Antenna) 등이 있습니다.

 

타입페이스 디자이너가 된 과정은 어떠했나요?

사실 전 처음부터 타입페이스 디자인을 공부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고,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 재학 시 그땐 그곳에 타입페이스 관련 학과도 없었죠.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스스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가 타입페이스 디자인입니다. 당시 수많은 타입페이스를 드로잉하며 실력을 키웠고, 때때로 폰트 뷰로에 찾아가 제가 드로잉한 타입페이스 디자인을 보여주곤 했었죠. 결국 졸업 후 바로 폰트 뷰로에 들어가게 되었고, 데이빗 버로우(David Berlow), 매튜 카터(Matthew Carter), 토비아스 페레-존스(Tobias Frere-Jones)등의 어시스턴스로 2~3년간 실무를 배우고, 그 이후에는 저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타입페이스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스테인리스(Stainless)일 것입니다. 이 타입페이스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집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타입페이스를 만들 때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나 제작 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에는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유용한 타입페이스는 비슷한 부류의 다른 이들에게도 유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타입페이스를 제작할 때 실제든 가상이든 특정한 클라이언트를 설정하기도 하는데, 스테인리스 경우에는 저명한 출판디자이너를 타겟으로 제작되었죠. 이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다 보니 다른 수 많은 출판디자이너들에게도 이 타입페이스가 유용하게 쓰여졌나 봅니다.


▲ 스테인리스(Stainless), 프리미어 매거진(Premiere magazine)에 사용되기도 했다.

다른 몇 가지 대표 타입페이스들을 독자들에게 소개부탁드립니다.

먼저 산세리프체 스타일의 안테나(Antenna)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서체를 통해 신나고 자유로운 특징을 발견하고 기대하는데, 안테나는 여기에 차분함과 신중함을 더해 보다 발전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이탤릭체를 포함하여 일곱 종류의 굵기와 네 종류의 폭으로 총 56개의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어 세부적인 작업까지 효율적으로 도와줍니다.


▲ 안테나(Antenna)

또 하나의 대표 타입페이스로는 신문용인 조칼로(Zocalo)입니다. 조칼로는 멕시코 시티의 데일리 신문인 ‘엘 유니버셜(El Universal)’에 쓰인 서체로 본문용과 디스플레이용이 서로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용은 니콜라스 키스(Nicholas Kis)의 올드 스타일과 천시 그리핀스(Chauncey Griffith)의 전통적인 신문 타입페이스인 ‘아이오닉 No. 5’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반면 디스플레이용은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멕시코 시티의 분위기를 한껏 담았습니다.


▲ 조칼로(Zocalo) 본문용(좌)과 디스플레이용(우)

▲ 프렌자(Prensa). 인터뷰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프렌자 역시 그의 대표적인 타입페이스 중 하나이다. 2002년 국제 타입페이스 공모전인 ‘Bukva:Raz!’의 수상작으로 초기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타입페이스이기도 하다.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최근에 아이비스(Ibis)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아이비스는 유스투스 에리히 발바움(Justus Erich Walbaum)의 ‘발바움(Walbaum)’ 과 헤르만 챠프(Hermann Zapf)의 ‘멜리어(Melior)’ 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들 두 타입페이스가 조합한다면 어떤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시작으로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 아이비스(Ibis) 본문용(좌)과 디스플레이용(우)


타입페이스를 제작할 때,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이 있나요?

1940년대 라이노타입의 디자이너였던 천스 그리피스(Chauncey Griffith)가 했던 작업 방식을 저만의 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자간 조절과 문자 드로잉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작업 시간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드로잉을 하며 문자 내의 공간과 자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일깨워줍니다. 
작업 프로세스 면에서는 초반에는 주로 연필로 러프하게 스케치를 하며 아이디어를 꺼내지만, 이후 대부분의 작업은 컴퓨터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교정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인데, 교정을 보기 전에는 꼭 휴식을 취하는 편입니다. 그래야지 생기 있는 눈으로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폰트를 만들 때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나요?

사실 저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언급하기가 꺼림직하네요. 아주 기술적인 차이를 제외하면, 소프트웨어는 디자인 전반에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웹사이트(www.occupant.org)를 보면 스케치북이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볼 수 있는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어떤 클라이언트를 위한 것이 아닌 저만의 작업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드로잉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발견하는 저는 지난 15년 동안 거의 매일 스케치북에 문자뿐 아니라 카툰이나 글, 혹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무엇이든 드로잉을 해왔습니다. 이 작업들은 순수하게 재미와 아이디어를 위한 것이지 아름답게 보여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 그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습작형식의 다양한 드로잉을 엿볼 수 있다.(www.occupant.org). 흥미로운 점은 그의 스케치북 속에서 한글 드로잉도 만나볼 수 있는 데, 그는 한글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최근 E-book 이나 태블릿 등이 업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기기들을 위한 타입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본문을 위한 타입페이스를 디자인 할 때, 먼저 해상도에 의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지면에 인쇄된 경우에는 10포인트의 게라몬드(Geramond)와 카스론(Caslon)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가 있지만 태블릿 스크린에서 동등한 사이즈의 이 폰트들을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차이가 날 만큼 픽셀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타입페이스 디자이너로써 이는 매우 맥 빠지는 일입니다. 공들여 제작한 서체가 그 세밀한 디테일적 특성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태블릿용 폰트를 만들고 난 후, 그 활용에 있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태블릿 스크린은 정해진 사이즈의 특성상 때로는 세로단이 너무 좁은 레이아웃이나 줄 사이 공간이 너무 넓게 할애되도록 강요하기도 하는 등 조판상의 많은 제약들이 타입페이스의 역할을 상당히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태블릿이나 E-book은 이제 앞으로를 이끌어갈 선진 IT기술인 것은 확실하지만, 타입페이스 디자인 부분에서는 아직 원시적인 수준으로 이는 타입페이스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퍼블리셔, 태블릿 제조업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타입페이스 디자이너가 있다면?

대부분 일을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가진 데이빗 버를로우(David Berlow)와 매튜 카터(Matthew Carter), 그리고 자기만의 신선한 관점과 열정을 가진 신진 디자이너인 데이빗 조나단 로스( David Jonathan Ross)까지 모두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좋은 타입페이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매거진 헤드라인에 쓰이던, 소설 속 본문에 사용되던, 좋은 타입페이스란 자신의 용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특별하게 쓰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입페이스 디자인은 글꼴 자체가 아닌 그것에 의해 형성된 일련의 맥락을 통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타입페이스는 어떤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할 때, 더욱 극적이거나, 미묘하게 혹은 차분하게 그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 줄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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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타입페이스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

먼저 지금 학생들을 위한 타이포그래피 도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완성될 것입니다. 타입페이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 혹은 이제 막 시작한 디자이너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드로잉이 가장 중요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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