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활자 디자인 철학, 마르틴 마요르 Martin Majoor_후편

 


글: 마르틴 마요르(Martin Majoor)  |  번역: 서울대학교 타이포그래피 동아리 ‘가’
감수: 유지원 (산돌커뮤니케이션 책임연구원)  |  정리: 길영화 기자


스칼라와 스칼라 산스. 두 개의 활자체, 하나의 형태원칙

 

나는 1987년에 스칼라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위트레흐트에 소재한 프레던뷔르흐 음악센터에 소속된 두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하나였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다른 어떤 연주회장보다 많은 공연들이 기획된 대형 콘서트 홀이었다. 우리는 애플 맥킨토시의 첫 모델로 작업했고, 페이지 메이커 1.0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골라쓸 수 있는 활자체는 16가지가 전부였다. 나는 올드 스타일 피겨(osf, old style figure)라고도 불리는 소문자형 숫자(lowercase number), 작은 대문자(small cap), 이음글자(ligature)를 사용하도록 타이포그래피 교육을 받았는데, 이 16개 포스트스크립트 폰트 중에 이들을 포함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연주회 프로그램, 소책자, 포스터는 작곡가부터 곡명, 지휘자, 오케스트라, 독주자, 일시와 장소까지 포괄하는 매우 다양한 층위의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이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려면 소문자형 숫자, 작은 대문자, 이음글자가 필요했다. 하여, 이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의 팀장 얀 빌럼 덴 하르토흐(Jan Willem den Hartog)는 내게 특별히 프레던뷔르흐를 위한 활자체를 디자인 해달라고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이 스칼라였다. 밀라노의 오페라 좌인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을 딴 이름이다.

 

1989년 11월 17일, 위트레흐트의 프레던뷔르흐 음악센터에서 스칼라는 공식 발표되었다. 그 당시 디자인 부서장이었던 얀 빌럼 덴 하르토흐는 비밀리에 포스터 형식의 활자 견본집을 디자인해서, 스페셜 런칭 파티 때 내게 선물로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깜짝 선물이었다. 이 포스터는 스칼라의 첫 활자 견본집이라 할 수 있었다. 1990년 1월, 월간지 「프레던뷔르흐 위트레흐트 마안다헨다(Vredenburg Utrecht Maandagenda)」에서 스칼라는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년 후 스칼라는 FF스칼라(FF Scala)라는 이름으로 폰트샵 인터내셔널(FontShop International)에서 출시되었다.

  


▲ 스칼라가 처음 적용된 예. 프레던뷔르흐 프로그램 인포메이션의 세부. 얀 빌럼 덴 하르토흐 디자인, 1989년

  

스칼라의 형태원칙은 벰보(Bembo) 등 인본주의적 활자체와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타이포그래퍼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의 활자체들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다만, 나는 대개의 포스트스크립트 폰트들이 너무 가늘다는 걸 몸소 느낀 바 있어, 스칼라에서 획의 굵기는 고르도록, 세리프는 단단하도록 만들었다. 이탤릭체는 아리기(Arrighi) 등 16세기 이탈리아 명필가들의 필체에 어느 정도 근거를 두었다. 단, 스칼라의 이탤릭체는 상당한 수준의 세부까지 그 정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1) 스칼라 전체 패밀리를 디자인하는 과정 동안 내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소문자형 숫자가 별도로 분리된 올드 스타일 피겨(osf) 폰트 아닌 일반(normal) 폰트에 포함되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일반 폰트에는 대문자형 숫자(table figure 2))들만 들어가는 다소 비논리적인 관습에 반하는 일이었다.

  

역주 1) 16세기 이탈리아 명필가들인 아리기, 타글리엔테, 팔라티노 등의 흘림체는 이탤릭체의 직접적 모태가 되었다. 그들의 흘림체는 아직 정체와 쌍을 이루지 않은 독립적인 필체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이탤릭체와 개념이 다르다.

 

역주 2) 국내에서 전문 타이포그래퍼들 아닌 일반에게는 이 숫자 형태만 익숙할 것이다. 소문자형 숫자는 어센더, 디센더가 있어 4선을 기준으로 하지만, 대문자형 숫자는 대문자처럼 위아래 2선을 기준으로 배열되므로, 위아래 높낮이가 일정하여 한글과는 성격이 더 잘 어울리기도 하다. 위아래 두 줄이 쳐진 표(table)의 한 칸 안에 배치할 때 한 눈에 알아보기 효율적인 숫자라서 table figure라고 한다. 19세기에 등장해서 널리 퍼졌으므로, 소문자형 숫자들은 그에 대비하여 올드 스타일로 구분하기도 했다.

  


▲ 스칼라와 스칼라 이탤릭체 개괄

  


▲ 세리프를 가진 스칼라를 스칼라 산스로 바꾸는 방법

  

스칼라 산스는 말 그대로 스칼라로부터 파생되었다. 나는 검정 마커과 수정액을 사용해 세리프 글자들을 산세리프체로 바꾸었다. 그 결과 스칼라 산스는 보다 ‘인본주의적’ 글자체의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면모를 가진 산세리프체는 드물었다. 주목할만한 몇몇 예외가 있다면 런던 언더그라운드(London Underground), 길 산스, 로물루스 산스, 신택스(Syntax, 한스 에두아르트 마이어 디자인) 정도였다. 신택스 정체는 이제껏 존재했던 그 어떤 산세리프체와 비교해도 진실로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수반한 이탤릭체는 기울어진 정체였다. 이탤릭체의 산스가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가에 관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견해들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기엔 마이어에게 때가 아마도 너무 일렀던 것 같다.

  

◀ 신택스 정체와 이탤릭체

  

산세리프체를 위한 소문자형 숫자들을 디자인하고 나서야, 나는 그 시기까지 소문자형 숫자들이 산세리프 활자체에는 보이지 않았더란 사실을 발견했다. 에릭 길조차도 길 산스에 이들을 만들어 넣은 적이 없었다. (모노타이프사가 이들을 추가해넣은 건 1990년대의 일이었다.) 기묘하게도 오히려, 렌너가 유일하게 이들을 푸투라에 디자인해서 넣었다. 비록 좀처럼 사용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 푸투라와 길 산스의 소문자형 숫자들

  

스칼라 산스 이탤릭체는 그 정체가 가진 모든 대응물의 형태를 그야말로 등가적으로 따른다. 이탤릭체는 작은 대문자, 이음글자와 소문자형 숫자를 포함한다. 이로써 스칼라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 정체와 이탤릭체 모두에서 이 모든 부호들을 갖춘 첫 패밀리가 되었다.

  


▲ 스칼라 산스와 스칼라 산스 이탤릭체 개괄

  

스칼라와 스칼라 산스를 디자인할 때 나의 모토는 ‘두 개의 활자체, 하나의 형태원칙’이었다. 스칼라와 스칼라 산스 각각의 정체와 이탤릭체가 가진 공통된 골격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 스칼라(파란색)와 스칼라 산스(주황색) 활자체의 정체와 이탤릭체 버전의 골격들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에 관한 이런 생각들을 실행할 때 새로운 디지털 디자인 기술의 가능성들에 힘입어 나는 굉장한 자유를 누렸다. 내가 타입페이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시간적 압박도 없었고 음악센터는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세리프와 산스에 관한 생각을 아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상당수의 일반적 통념들은 내게 논리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으니 독자적인 디자이너로서 나는 운이 좋았다.

1990년, 스칼라는 폰트샵 인터내셔널의 진지한 첫 본문용 활자체로서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 패밀리가 극도의 명성을 누린 건 3년 후 스칼라 산스가 부각되면서부터였다. 세리프와 산스를 하나로 묶은 활자체는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쓰기에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7년, 나는 스칼라에 라이트, 블랙 등의 웨이트와 컨덴스드(condensed)를 추가했다. 스칼라 주얼(Scala Jewels)이라 불리는 네 가지 디스플레이용 버전들도 디자인했다.

  

텔레폰트. 그 와중에 만들어진 단독 산세리프체

 

1993에서 1994년 사이, 나는 네덜란드 전화번호부를 위한 텔레폰트 리스트(Telefont List) 와 텔레폰트 텍스트(Telefont Text)를 디자인했다. 내가 의도한 활자체는 산세리프체로, 이번에는 산세리프의 근간으로 쓸 특정 세리프 활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나는 스칼라 패밀리를 디자인하는 동안 얻은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스칼라 산스 작업과 비교했을 때 제약조건들을 훨씬 많이 고려해야 했다. 둘 중 먼저 디자인했던 텔레폰트 리스트는 면적을 가급적 덜 차지하도록 값싼 종이에 작은 크기로 인쇄하면서도, PPT(Post, Telefonie, Telegra¬fie)가 이전에 사용해온 닳아빠진 유니버스보다 훨씬 읽기 편해야 했다. 동시진행적으로 나는 전화번호부 자체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고민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이점으로 드러났으니, 나는 내가 4단 그리드 안에서 수정한 결과로서의 활자체를 세부까지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었던 데다, 그렇게 활자체를 수정하고 나서는 다시 페이지 레이아웃을 조율할 수도 있었다. 이는 활자 디자이너로서 드물지만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어떤 경우든 서적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유용하게 작용했다.

  


▲ 텔레폰트 리스트와 텔레폰트 텍스트 개괄

  

텔레폰트 리스트는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전화번호부 목록에 쓰기 위한 정말 활용도 높은 활자체인 반면, 텔레폰트 텍스트는 작은 대문자나 소문자형 숫자들처럼 타이포그래피적인 세부를 다듬기 위한 숱한 장치들을 써서 일일이 고르게 조율해야 하는 안내 페이지 등의 지면을 위해 디자인한 활자체였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요약하곤 한다. ‘많이 사용하는 활자체일 수록 기능의 폭이 좁고, 별로 사용하지 않는 활자체일수록 기능의 폭이 넓다.’

텔레폰트 리스트와 텔레폰트 텍스트는 1994년 이래 네덜란드 전화번호부에만 독점 적용되어 왔지만, 근자에 출시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게 텔레폰트 세리프를 만들 계획은 없다. 산세리프체로부터 세리프체 디자인을 파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리아와 세리아 산스, 문학작품을 위한 활자체

 

1996년 여름, 베를린에서 바르샤바로 돌아가는 기차의 식당칸에서 가져온 식탁용 냅킨 위에 나는 세리아(Seria)의 첫 스케치를 끄적거렸다. 스칼라가 문학작품 텍스트에는 어울리지 않더라는 불만이 세리아 디자인의 촉매가 되었다. 시나 다른 문학작품들에 쓰기에 스칼라는 어센더와 디센더가 너무 짧다는 점을 간파하면서, 나는 서적 디자이너로서 이런 텍스트에만큼은 스칼라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센더와 디센더를 길게 늘린 버전의 스칼라도 고려해봤지만, 다음 순간 내가 원하는 건 몇몇 디테일만 수정하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칼라는 스칼라이니, 수정을 가하려거든 아예 긴 어센더와 디센더를 가진 새로운 활자체를 만들어야 하리라고 나는 결심했다. 이때, 좀더 경제적이거나 지면을 절약하는 활자체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다.

  

◀ 세리아 패밀리를 스케치했던 식탁용 냅킨

  

나는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활자체의 디자인에 착수해 있었다. 세리아 패밀리의 개별 낱자들은 크게 확대해야만 제대로 보이는 미묘한 디테일과 관습에 따르지 않는 꺾임형태를 많이 가지고 있다. 작은 크기에서는 이러한 디테일을 볼 수는 없더라도 아마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다소 각진 꺾임형태들에 의해 세리아는 ‘고의적인 불균정함’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활자 디자이너 윌리엄 드위긴스(W. A. Dwiggins)나 내 네덜란드 동료인 브람 더 되스(Bram de Does)가 활용했던 원칙으로, 어느 정도의 불균정함이 오히려 문자를 쉽게 판별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기울기가 없는 이탤릭체도 세리아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 세리아와 세리아 이탤릭체 개괄

  

세리아를 산세리프 버전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나의 의지는 처음부터 확고했다. 다시 검정 마커와 수정액을 써서 나는 세리프 달린 낱자들을 산세리프체로 변경했다. 그 결과, 세리아 산스는 그 세리프체 파트너만큼 긴 어센더와 디센더를 가지고 되었고, 이는 산세리프체로서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세리아 산스의 견고한 힘은 세리아로부터 모든 요소들을 일관되게 파생시킨 결과의 산물이고, 그 이탤릭체와 볼드 이탤릭체 형태에서 특히 이점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 세리아 산스와 세리아 산스 이탤릭체 개괄

  

세리아를 마무리하기 1년 전인 1999년, 나는 폴란드 바르샤바 추계음악제의 총감독이자 작곡가인 타데우쉬 빌렉키(Tadeusz Wielecki)의 의뢰로 이 음악제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포스터, 소책자, 음반 뿐 아니라 프로그램 책자의 내지 타이포그래피도 새로 디자인했다. 활자를 디자인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서적 타이포그래퍼로서도 작업을 한 셈인데, 이것은 내게 새로 디자인한 세리아와 세리아 산스를 사용하고 검토해보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때의 결과가 워낙 확실하다 보니, 그 이후로 이 책자의 타이포그래피는 더 고칠 필요가 없이 계속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세리프-산세리프-믹스. 넥서스 원칙

 

스칼라와 세리아를 디자인하던 당시, 나의 모토는 ‘두 개의 활자체, 하나의 형태원칙’이었다. 세리프와 산세리프 버전은 공통된 바탕에서 나와야 하고, 나아가 세리프체로부터 산세리프체가 파생되는 것은 한층 더 바람직하다. 세 번째 버전인 슬랩세리프체는 다시 산세리프체로부터 파생되면 된다는 발상에 생각이 미치기까지는, 상상력을 그다지 골똘히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산세리프 낱자들에 두꺼운 세리프를 덧붙이기만 하면 된다. ‘두 개의 활자체, 하나의 형태원칙’이라는 나의 초창기 활자 디자인 철학은 ‘세 개의 활자체, 하나의 형태원칙’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다.

나는 이를 ‘넥서스 원칙(nexus principle)’이라 부른다. 넥서스(nexus)는 연관성(connection)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이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나는 세리프, 산세리프, 슬랩세리프를 포괄하는 세 가지 활자체들이 ‘연관된’ 넥서스 패밀리를 디자인했다. 나는 여전히 처음에는 세리프, 그 다음에 산세리프, 마지막으로 슬랩세리프가 나오는 거라고 믿는다. 슬랩세리프 버전에는 궁리 끝에 ‘믹스(Mix)’라는 단어를 쓴 ‘넥서스 믹스(Nexus Mix)’란 이름을 붙였다. 슬랩세리프는 정말로 산세리프와 세리프 사이의 혼합물(mixture)이라는 생각에서다.

  


▲ 넥서스 세리프, 넥서스 산스, 넥서스 믹스 활자체의 정체와 이탤릭체 버전의 골격

  

처음에는 세리아에서 어센더와 디센더의 길이만 줄인 변형 활자체 정도로 구상했으나, 디자인을 진행해가며 비례와 디테일에 추가적인 수정을 가하고 이탤릭체도 새로 그리다 보니, 넥서스는 재빨리 독립된 어엿한 활자체로서 구색을 갖춰갔다. 그 결과 모든 웨이트에서 작은 소문자, 네 가지 다른 종류의 숫자, 이음글자 등의 요소들이 추가된, 스칼라와 유사하게 활용도 높은 활자체가 탄생했다.

  


▲ 넥서스 세리프, 넥서스 산스, 넥서스 믹스

  

넥서스 이탤릭체에 나는 넥서스 스워시 이탤릭체(Nexus Swash italic)를 추가해서 디자인했다. 이들은 두 세트의 스워시 대문자에, 획의 마무리 부분을 각각 길거나 짧게 처리한 두 세트의 스워시 소문자를 포함했다. 또 다른 버전 하나는 네 가지 웨이트를 완비한 고정폭 폰트인 넥서스 타이프라이터(Nexus Typewriter)이다. 소문자 ‘m’은 가운데 획을 특별히 짧게 다듬어 지면에서 고른 인상이 들도록 했다.3)

  

역주 3) 고정폭 폰트가 아닐 경우, m은 가장 폭이 넓고 i는 가장 폭이 좁다. 타자기의 글쇠처럼 낱자의 기본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낱자가 똑 같은 폭 안에 들어가는 고정폭 폰트에서, 세 개나 되는 세로획을 가진 m은 정해진 폭 안에 비좁게 들어차게 마련이다. 따라서 조판할 때 유독 고르지 않게 뭉쳐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 넥서스 스워시 이탤릭체(왼쪽)와 넥서스 타이프라이터(오른쪽)

  

2004년, 넥서스 패밀리(넥서스 세리프, 넥서스 산스, 넥서스 믹스, 넥서스 타이프라이터)가 출시되었다. 당시 폰트샵의 첫 오픈타이프 폰트(OTF) 패밀리 중 하나였다.

  

우리 시대의 산세리프체

 

예전의 산세리프체들은 대부분 산세리프가 어떤 외관을 가져야 하는지 별달리 고민도 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이런 디자인들은 어느 정도는 서로를 모방하기도 했다. 본인이 디자인한 활자체가 왜 그런 모양으로 생겼는지 디자이너 스스로도 모르는 채 말이다. 헬베티카와 애리얼이 가장 뚜렷한 예들이다.

세리프-산세리프체 패밀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선 후의 일이었다. 이들 패밀리의 세리프체 구성원은 대개 전통적인 형태에 기반한다. 반면, 산세리프체 구성원은 그 세리프 구성원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바탕을 취한, 우리 시대의 산세리프체이다. 이런 현대적인 산세리프체의 이탤릭체는 대부분 기울어진 정체가 아니라, 진짜 이탤릭체이거나 진짜에 준하는 이탤릭체들이다. 이러한 예를 몇 개만 언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에드 벤갓(Ed Benguiat) 디자인의 ITC 벤갓(ITC Benguiat, 1977년), 
· 크리스 홈즈(Kris Holmes)와 찰스 비글로우(Charles Bigelow) 
   디자인의 루시다(Lucida, 1984-1985년), 
· 섬너 스톤(Sumner Stone) 디자인의 스톤(Stone, 1987년), 
· 오틀 아이허(Otl Aicher) 디자인의 로티스(Rotis, 1989년), 
· 마르틴 마요르(Martin Majoor) 디자인의 스칼라(Scala, 1990-1993년), 
· 프레드 스메이어스(Fred Smeijers) 디자인의 콰드라트(Quadraat, 1992-1996년), 
· 마이클 길(Michael Gills) 디자인의 샬럿(Charlotte, 1992년), 
· 로널드 아른홀름(Ronald Arnholm) 디자인의 레거시(Legacy, 1993년), 
· 피터 빌락(Peter Bilak) 디자인의 유레카(Eureka, 1998-2000년).

  


▲ 우리 시대의 아홉 가지 활자체들. 모두 세리프 구성원과 산세리프 구성원을 포함한 패밀리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상황 (2005년)

1983년, 내가 활자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단 하나의 세리프 활자체만 만들었다. 가장 최근에 만든 나의 활자체 넥서스는 각종 타이포그래피적 요소들을 완비한 세 가지 버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2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어떤 의미에서, 지난 15년은 산세리프 활자체의 혁명기였다. 보다 많은 활자 디자이너들이 산세리프체의 기원을 자각하게 되면서, 산세리프 디자인은 세리프 디자인을 동반하기에 모자랄 것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다가오는 15년은 아마도 슬랩세리프 활자체의 혁명기가 될 것이다. ‘넥서스 원칙’은 그 이후에도 네 가지, 다섯 가지 구성원이 중첩되며 확장되어 갈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리라.



ⓒ Martin Majoor, 2010.

이 글은 200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티포흐라피카(TipoGrafica)」 53호에서 ‘나의 활자 디자인 철학(My Type design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2006년에는 얀 미덴도르프와 에릭 슈피커만이 편집한 책 ‘메이드 위드 폰트폰트(Made with FontFont)’에서 ‘넥서스 원칙(The Nexus Principle)’이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한 글을 새로 실었다.
2009년 마르틴 마요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글을 다시 개정증보한 후 업데이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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