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활자 디자인 철학, 마르틴 마요르 Martin Majoor_전편

글: 마르틴 마요르(Martin Majoor)  |  번역: 서울대학교 타이포그래피 동아리 ‘가’
감수: 유지원 (산돌커뮤니케이션 책임연구원)  |  정리: 길영화 기자

 


골치 아픈 세리프-산세리프체 섞어 쓰기

서적 타이포그래퍼가 아니라면 훌륭한 활자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디스플레이용 활자가 아닌 본문용 활자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활자 디자이너라면 텍스트 내에서 활자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종이마다 활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서로 다른 인쇄기법에 따라 활자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서적 디자이너로서 나는 텍스트 내 여러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하나 이상의 활자체를 필요로 하는 몇몇 복잡한 책을 다룬 바 있다. 산세리프체와 세리프체를 섞어서 쓰는 것은 때로 퍽 유용하다. 다만, 각각 어떤 활자체를 고르느냐가 항상 문제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과 헬베티카(Helvetica)가 섞여서 쓰이곤 한다. 그 이유는 단지 어느 컴퓨터에나 이 폰트들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조합이 최악이라고까지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뉴스 고딕(News Gothic), 길 산스(Gill Sans), 푸투라(Futura) 같은 산세리프체를 본문용으로 사용하는 것까지는 분명 납득할만하다. 그런데 이 산세리프체들을 어떤 세리프체들과 함께 사용해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산세리프-세리프 섞어 쓰기가 역사적 지식이나 양식적 지각없이 텍스트에 적용되는 비운의 결말로 치닫는 경우는 허다하다. 미학적 견지에서, 가라몬드(Garamond)/유니버스(Univers)1) , 혹은 보도니(Bodoni)/길 산스의 조합을 대하면 머리가 지끈 아프다. 광고에서는 이런 조합들을 써도 괜찮을 듯 싶다. 광고를 보고 머리가 아파지는 건 오히려 유용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복잡한 텍스트를 다루는 최선의 해결책이란 하나의 공통된 바탕을 공유하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를 섞어 쓰는 법이라는 점이 내게는 점점 분명해졌다. 하지만 어떤 세리프-산세리프체 조합이 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산세리프체의 기원

본문에서 세리프와 산세리프를 섞어 쓰는데 관해 설명하기에 앞서, 산세리프 활자체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 백여 년에 불과하니, 그 기원부터 명백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산세리프체는 바로 영국 윌리엄 캐슬론 4세의 활자주조인쇄소로부터 1816년 경 출판된 인쇄물의 활자체라 볼 수 있다. 이 2행 잉글리쉬2) 이집션(Two Lines English Egyptian)이라는 이름의 활자체는 대문자만으로 이루어진 디스플레이용 활자체였다. 이런 다소 어설픈 형태는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산세리프 활자체로서의 디자인적 가치는 미미하다.

 

 

역주 1) 프랑스어로 ‘위니베르’가 옳은 표기이지만, 익숙한 관습에 따라 ‘유니버스’라는 표기로 통일한다.

역주 2) 디지털 방식으로 활자 크기를 조절할 수 없었던 금속활자 시대에는 크기 별로 각각 다른 폰트를 제작해야 했다. 영국의 활자주조소에서는 대륙의 유럽과 달리 포인트 숫자체계 대신 활자의 크기마다 각각 고유한 이름체계를 붙여서 마치 그 활자의 이름처럼 사용했다. ‘잉글리쉬(English)’는 약 13~14포인트 크기이다. Two Lines는 double과 같은 뜻으로 쓰였으며, 이는 위아래 2행을 차지하는 크기라는 뜻이니 ‘2행 잉글리쉬(Two Lines English)’는 잉글리쉬의 2배인 26~28포인트 크기를 의미한다.

   

▶ 윌리엄 캐슬론 4세의 활자주조인쇄소에서 1816년 경 출판된 디스플레이용 산세리프 활자체

 

이보다 1898년 독일 베를린의 베르톨트 활자주조소에서 출시된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Grotesk)의 경우가 훨씬 흥미롭다. 이 산세리프 활자체는 출시되자마자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고, 여러 활자주조소에서 곧 이를 다투어 모방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여느 산세리프체들과 마찬가지로, 악치덴츠 그로테스크는 디스플레이용 활자체로 사용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독일어로 악치덴츠슈리프트(Akzidenxschrift)는 서적의 본문용 활자가 아닌, 잡다한 광고매체의 디스플레이용 활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악치덴츠 그로테스크는 소문자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본문용으로도 걸맞았다. 그렇다면 이 악치덴츠 그로테스크는 어디에 형태적 근간을 둘까? 최초의 인쇄용 활자들은 15세기로부터 거슬러왔는데, 이들은 필체를 모방한 세리프 활자체들이었다. 19세기 산세리프체가 등장하던 시기에, 이 산세리프 활자체들이 근간으로 삼을 수 있는 건 당시에 통용되던 세리프 활자체들 뿐이었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각종 웨이트(weight) 대부분은 자의식 강한 활자 디자이너가 아니라, 베르톨트나 여타 다른 활자주조소의 능숙하지만 이름없는 펀치제작자들이 깎아서 만들었다.

 

▶ 베르톨트 활자주조소에서 1898년 출시된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이는 펀치제작자들이 세리프를 결여한 형태를 둘러싼 일반적인 견해를 공유해야 했다는 뜻이니, 그들은 아마 발바움(Walbaum)이나 디도(Didot)처럼 당시에 잘 알려져 있던 모던스타일3) 로만체의 형태로부터만 그렇게 합의된 견해들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발바움과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낱자들을 겹쳐놓으면 이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두 활자체는 바탕 형태, 다시 말해 골격이 일치한다.

 

 

역주 3) 원문에는 classic과 classisistic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르네상스 로만체(세리프체)는 올드스타일, 바로크 로만체는 과도기형, 고전주의 로만체는 모던스타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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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와 발바움을 서로 포갠 모습

 

하지만 이들 모던스타일 활자체들은 산세리프체가 근간으로 삼을만한 좋은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발바움의 경우, 소문자 c와 숫자 2, 5같은 낱자들에서 가늘게 맺어지는 꼬리는 우아하지만, 이 가느다란 부분들이 산세리프에서는 그저 두꺼워지기만 하면서, 결국은 거의 ‘닫혀진’ 형태로 귀결된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는 발바움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으니, 텍스트에서 이 두 활자체를 섞어 쓰는 것은 봐줄 만한 조합을 이룬다.

 

 

◀ 발바움의 가늘게
맺어지는 꼬리

 

1916년, 최초의 산세리프체가 출시된 지 정확히 100년 되던 해에, 영국의 캘리그래퍼인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은 런던지하철을 위한 활자체를 디자인한다. 이 존스턴 산스(Johnston Sans)의 대문자들은 분명 캐슬론 올드 페이스(Caslon Old Face)가 근간이기는 하나, 소문자들은 에드워드 존스턴의 캘리그라피적 솜씨의 산물이다. 산세리프체가 기존의 세리프 활자체 아닌, 납작 펜으로 쓴 필체에 근간을 둔 건 이 소문자들이 처음이다.

 

▶ 존스턴 산스, 에드워드 존스턴의 런던지하철 알파벳, 1916년

 

돌에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활자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 에릭 길(Eric Gill)은 모든 면에서 비범한 활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세리프 활자체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지고 인쇄용 활자를 디자인 했다. 그리고 1928년, 그는 길 산스를 만들었다. 길 산스는 산세리프체였지만, 돌에 세리프체 글자 형태를 새기는 경험이 녹아들어 있었다. 본인 스스로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길 산스는 그가 머릿속에 구상해둔 특정 세리프체를 근거로 했다. 길 산스와 세리프 달린 그의 파트너 조안나(1930년)를 섞어 쓰는 것은 타이포그래피적으로도 조화로운 지면을 창출해낸다. 조안나는 일종의 길 산스 아베크4) 인 것이다! 에릭 길이 애초부터 조안나와 길 산스를 하나의 패밀리(family)로 계획하기만 했어도, 그는 세리프와 산세리프를 동시에 한 패밀리로 디자인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역주 4) ‘세리프 달린 길 산스’라는 의미로, 저자의 언어유희이다. 세리프가 없을 때 프랑스어 sans(without)라는 표현을 쓰므로, 세리프가 달렸다는 뜻의 이름을 프랑스어 avec(with)로 표현했다.

   

 

◀ 길 산스(1928년)와 조안나(1930년)

 

1927년에는 파울 렌너의 푸투라가 출시되었다. 이 산세리프 활자체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근간이었던 한 물 간 모던스타일 글자형태를 모태로 삼는 대신, 스크래치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했다. 푸투라는 자형이 대단히 구조적이어서 바우하우스 운동과 구성주의적 이념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렌너는 로마시대 비문에 새겨진 대문자들처럼 고전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푸투라를 디자인했다. 균형을 잘 갖춘 본문용 활자체이면서도, 당시 유행하던 바우하우스 운동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푸투라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 푸투라(1928년)의
활자 견본집

 

1957년경에는 푸투라같은 전쟁 전의 기하학적 활자체들에 대한 일종의 반향으로 헬베티카(Helvetica)를 비롯하여 그 아류들이 숱하게 쏟아졌다. 이 활자체들은 빠짐없이 예의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에 바탕을 두었고, 이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기존 산세리프체를 기본으로 새로운 산세리프체를 만드는 데에는 비용이 보다 적게 들었으니, 이들 활자체들이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와 비교할 때 어떤 새로운 특징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보다 나아진 척 위장하지만, 사실 헬베티카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매력인 투박함과 개성마저 잃은 활자체일 뿐이라 생각한다. 1982년 출시된 애리얼은 최악이라 할 만하다. 헬베티카를 거의 일대일로 따라 만들었으니, 애리얼이야말로 표절의 궁극적 표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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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치덴츠 그로테스크(1898), 유니버스(1954), 헬베티카(1957), 애리얼(1982) 비교

 

 

◀ 헬베티카(1957)를 거의 일대일로 따라 만든 애리얼(1982)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온갖 모조품 가운데, 유니버스는 활자 디자인으로서는 새로웠던 강력한 특징을 하나 지녔다. 서로 완벽하게 섞어 쓸 수 있는 21개 웨이트와 자폭이 거의 과학적이라 할만한 하나의 체계 속에 구성되었던 것이다. 유니버스는 웨이트와 자폭들이 명확한 체계성을 결여한 채 난무하던 산세리프 활자체들의 정글에 제시된 탁월한 응답이었다.

1997년, 유니버스는 60개가 넘는 버전으로 온전히 새로 그려졌다. 이는 불행히도 개선된 방향이 아니었다. 없어도 무관한 버전들이 이제 너무 많아졌고, 자간은 너무 좁았으며, 12도 각도로 기왕에도 상당하게 기울어져있던 이탤릭체는 15.5도라는 황당한 각도로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예의 성공한 활자체를 새로 디자인하는 것은 활자 디자이너가 고려함직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 21개 버전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유니버스 활자체 견본집 초판본, 1954년

 

산세리프의 이탤릭체 형태

산세리프 활자체에 있어서 이탤릭체는 정체를 기울인 버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니버스 이탤릭체를 예로 들어보자. 이탤릭체를 정체와 구분짓는 단 하나의 특성은 경사도 뿐이다. 경사도가 너무 작으면 별 차이가 나지 않을 터라, 유니버스 이탤릭체는 12도의 상당한 기울기를 갖고 있다. 이탤릭체다운 형태적 구조야말로 이탤릭체를 진짜 이탤릭체이게끔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이탤릭체의 외형은 정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진짜 이탤릭체라면 1도에서 9도 사이의 편안한 경사도를 가져도 서로 구분이 된다는 소리이다.

반복해서 말하건대,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의 이탤릭체는 정체를 기울인 버전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본질적인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왜 그 이탤릭체는 진짜 이탤릭체를 근간으로 하지 않았을까? 진짜 이탤릭체는 정체와는 다른 형태적 원칙을 가지고 있으니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이탤릭체라면, 이를테면 발바움 이탤릭체에 근거하여 만들어 내는 것도 그리 어려울 작업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는 아래 도판으로 입증된다.

 

▶ 마르틴 마요르의 해석에 따른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이탤릭체의 제안

 

19세기는 온갖 활자주조소들 간의 경쟁이 과열된 시기였다. 제품을 재빨리 생산해내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으니 그 시대 펀치제작자들에게 모방이 불가피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체를 베껴서 그대로 기울이는 일은 비교적 쉬웠던 반면, 진짜 이탤릭체를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손이 많이 갔다.

오늘날까지도, 산세리프 이탤릭체의 경우에는 정체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는 통념이 널리 용인되고 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산세리프 이탤릭체는 모두 ‘기울어진 정체(sloped roman)’이다. 심지어 저 위대한 활자 디자이너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tiger)조차 그의 산세리프 디자인에서 기울어진 정체를 만들어 넣지 않았던가. 그의 프루티거(Frutiger, 1977) 활자체에서 기울어진 정체를 진짜에 준하는 이탤릭체(semi-real italic)가 대체한 것은 2000년 디자인 리뉴얼 당시로, 다시 말해 최근에 와서야 일어난 일이다. 그도 진짜 이탤릭체가 정체와 한결 나은 대비감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 a가 정체를 기울이기만 한 프루티거 이탤릭체 초기 버전(1977년)과 진짜 이탤릭체에 준해서 디자인된 프루티거 넥스트 이탤릭체(2000)

 

푸투라 등의 활자체 역시 기울어진 정체를 가졌지만, 이 경우는 그래도 이해할 만 하다. 이탤릭체의 근거로 삼을만한 실제 세리프체의 모델 자체가 애초에 없었니 말이다. 푸투라는 기하학적인 사각형과 원으로부터 형태를 취한 구조주의적 활자체처럼 보여서, 진실로 원형적인 활자라는 감성을 갖게 한다. 푸투라의 이탤릭체는 그 정체보다 3년 늦게 출시되었다. 렌너는 구조주의적 의도에서 기울이기만 했던 푸투라 이탤릭체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하여, 쿠르지프(kursiv, 이탤릭체, 영어로는 italic) 대신 슈래크(Schrag, 기울임체, 영어로는 obliqu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길 산스(1928년)의 이탤릭체도 흥미롭다. 아마 산세리프체 가운데 진짜 이탤릭체다운 특성을 가진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비록 e, f, g ,m과 몇몇 낱자들은 정체를 기울인 형태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 산스 이탤릭체를 위한 에릭 길의 스케치 초안은 캘리그래피적 특질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는 진짜에 준하는 이탤릭체(semi-real italic)라고 할 수 있다.

 

 

◀ 길 산스 이탤릭체를 위한 스케치들(1928-1929년)

 

프레더릭 가우디(Frederic Goudy)의 산스 세리프 라이트 이탤릭(Sans Serif Light Italic, 1931년) 역시 언급을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이탤릭체로, 가우디의 산스 세리프 라이트(1930년)에 수반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비록 본인 생각에 산세리프 활자체에는 이탤릭체가 필요치 않다고 여겼지만 말이다. 산스 세리프 라이트 이탤릭은 경이로운 캘리그래피적 산세리프체로, 스워시(swash, 장식곡선꼬리)5) 대문자 A, M, N을 포괄하며, 진짜 이탤릭체에 거의 근접해있었다.

 

 

역주 5) 라틴알파벳 문화권에서는 글씨를 빨리 흘려 쓰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대문자가 소문자로, 소문자가 흘림체(초서체)로, 흘림체가 인쇄용 활자인 이탤릭체로 이행해갔다. 후에 대문자에도 이탤릭체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두 가지 인위적인 방식이 나타났는데, 한 가지가 기울여 쓰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가 스워시, 즉 장식곡선꼬리를 쓰는 것이었다. 우아한 필기체적 성격을 가지는 스워시는 대문자 이탤릭체의 한 양식이 되었다. 이는 세리프 달린 로만체에 나타난 양식적 진화 과정으로, 아직 산세리프체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라틴알파벳의 이탤릭체와 한글 흘림체 비교연구(글짜씨 1호 p.110-161): 유지원: 안그라픽스, 2010년

   

▶ 프레더릭 가우디의 산 세리프 라이트 이탤릭(1931년)

 

세리프-산세리프체 디자인하기와 섞어 쓰기

나의 견해로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가 같은 원천으로부터, 나아가 같은 골격으로부터 나와야 이 두 활자체를 섞어 쓰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듣기엔 간단하다. 세리프체를 디자인 하라. 세리프를 떼어내라. 획의 콘트라스트를 줄이라. 그러면 산세리프가 된다. 하지만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의식을 가지고 세리프체에 근거하여 산세리프체를 디자인하고자 처음 시도한 사람은 네덜란드 활자 디자이너인 얀 판 크림펀(Jan van Krimpen)이었다. 1930년대 초반, 그는 로물루스(Romulus)와 로물루스 산스(Romulus Sans)를 하나의 거대가족의 일부로서 디자인했다. 산세리프체 위에 세리프체를 겹쳐보면 판 크림펀이 이들을 말 그대로 서로에게 바탕을 두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 가지 웨이트로 제작된 로물루스 산스는 아쉽게도 출시되지 못한 채, 실험에 그치고 말았다.

 

▲ 로물루스의 세리프 버전과 산세리프 버전을 포개어 본 모습



ⓒ Martin Majoor, 2010.

이 글은 200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티포흐라피카(TipoGrafica)」 53호에서 ‘나의 활자 디자인 철학(My Type design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2006년에는 얀 미덴도르프와 에릭 슈피커만이 편집한 책 ‘메이드 위드 폰트폰트(Made with FontFont)’에서 ‘넥서스 원칙(The Nexus Principle)’이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한 글을 새로 실었다.
2009년 마르틴 마요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글을 다시 개정증보한 후 업데이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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