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와 특별 강연, ‘서체 디자이너의 전망’

지난 7월 2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이루어졌던 모리사와 특별 강연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가장 먼저, 50여 년간 서체 디자인 분야 선두에 있었던 매튜 카터(Matthew Carter)가 활자 시대의 몇몇 서체에 대해 슬라이드로 발표를 시작했다.

진행. 윤유성 에디터 outroom@fontclub.co.kr
자료 제공. 모리사와(www.morisawa.co.jp)
번역 및 감수. 박수현 폰트디자이너



라틴 텍스트와 본문용 서체, 매튜 카터

지난 7월 2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이루어졌던 모리사와 특별 강연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가장 먼저, 50여 년간 서체 디자인 분야 선두에 있었던 매튜 카터(Matthew Carter)가 활자 시대의 몇몇 서체에 대해 슬라이드로 발표를 시작했다. 매튜 카터는 타이포그래피 기술이 활자 인쇄에서 사진 식자, 그리고 디지털 조판까지 진화해 오는 동안 오랜 시간 그 선두를 지켜온 인물이다.



그는 옛 스크립트 서체들이 과거에 긴 본문을 위해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이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예전에는 블랙 레터(blackletter) 서체들이 읽기 쉬웠고 모두 읽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는 본문에서 더 이상 블랙 레터를 읽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New York Times>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제호 슬라이드들을 보여주면서, 그는 블랙 레터가 신문 제호로 선택되는 것은 흥미로운 전통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다른 서체들을 보여주면서, 그 서체들 중 몇몇은 한때 본문에서 읽기 쉬웠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습관을 잃어서 지금은 포스터에서 커다란 크기로 쓰이는 것에 제한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매튜 카터는 그가 디자인한 서체 중 몇 개를 보여주었다. 그 중 ‘밀러(Miller)’ 서체 패밀리는 타블로이드와 일반적인 신문에 쓰이도록 다양한 버전을 갖추고 있다. 한 신문사 고객을 위해 그는 웨이트(weight, 굵기)에서 단지 약간의 퍼센트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버전들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용된 인쇄 기술(사용된 잉크의 양), 또는 일러스트레이션에 할당된 페이지 공간의 양에 따라 다른 웨이트를 사용하는 예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잡지 <Newsweek>를 위해 매튜 카터는 본문, 작은 표제, 큰 표제를 위한 세 가지 서체의 버전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후에 그는 신문의 톱 전단에 걸친 제목(큰 헤드라인)을 위한 네 번째 버전과 그 보다 두꺼운 웨이트를 가지거나, 반전된 서체(어두운 배경에 쓰인 밝은 글자)를 위한 다른 버전들에 대한 제작을 요청 받았다고 설명했다.



매튜 카터는 디지털화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며 ‘몬티첼로(Monticello)’라는 서체를 예로 들었다. 그는 활자에 내재된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그 글립들 중 몇 개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디지털 버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서체가 보다 우아하게 보이도록 다시 디자인했다.

활자에서 디지털로 넘어갈 때 서체를 바꾸는 다른 예들을 보여주면서, 그는 서체가 활자(metal)에서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디지털 버전으로 만들거나 단순히 활자에서의 이미지를 스캔하여 그대로 디지털화할 경우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일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많은 예시를 보여주며 논리적으로 설명해준 매튜 카터의 발표는 통찰로 가득했다. 서체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서체를 사용하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도움될 내용이 많았다.



‘와란’ 디자인, 쿠니히코 오카노

‘와란(Waran)’은 2012년 모리사와 서체 디자인 공모전(Morisawa Type Design Competition 2012,http://competition.morisawa.co.jp) 간지(일본어 한자)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은 서체다. ‘와란’을 디자인한 쿠니히코 오카노(Kunihiko Okano)는 그가 어떻게 서체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그리고 ‘와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카노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서체 디자인에 처음으로 이끌렸다고 회상했다. 포스터를 만드는 학과 과제를 받았을 때 그는 목적에 맞는 서체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꼈고 그 계기를 통해 스스로 서체를 디자인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서체 디자이너가 되도록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 매튜 카터의 소피아(Sophia)를 만났다.

그리고 ‘와란’을 디자인하게 된 계기는 그가 네덜란드에서 서체 디자인을 공부할 때 찾아왔다. 에셔 박물관(Escher in Het Paleis, www.escherinhetpaleis.nl)와 마우리츠후이스 왕립 미술관(Royal Picture Gallery Mauritshuis, www.mauritshuis.nl) 등과 같은 박물관들은 시각적인 부분의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표지판, 팜플렛, 그리고 다른 요소들을 위해 주문 제작한 서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디자인 요소들의 일본어 버전은 서체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해 일관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오카노로 하여금 일본어와 서구 글자들 사이에 일관성 있는 표정을 갖는 서체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외국 기업들이 그들의 라틴 서체에 잘 맞는 일본 서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고 오카노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일본 서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와란’을 디자인할 때 오카노는 라틴 서체가 보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일본어와 라틴 글자 모두에 동일한 디자인 컨셉을 갖는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본의 지배적인 트렌드와는 반대로, 그는 라틴 서체가 일본 글자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라틴 글자들에 맞도록 일본 글자들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전에 만들었던 실험적인 디자인에 기반해 라틴 서체를 그리고 라틴 서체에 맞도록 일본 서체를 처음부터 디자인했다. 그 결과물이 모리사와 서체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한 와란이다.



‘와란’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그는 글자들의 허리 위치에 집중했다. 그는 처음에 라틴 알파벳에서 소문자들만 허리 부분을 올리려고 했는데, 이것은 라틴 글자들이 일본 글자들에 보조적인 역할만 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일본 글자들의 허리선을 낮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약간 넓어지도록 그렸다. 전체적으로 ‘와란’은 수평 획들을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정렬하고 수직 획들을 자유롭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수평적인 조판의 적합성을 강조했다. 명조나 산세리프 서체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일본 서체를 만들기 위해 그는 수평 선들의 오른쪽 가장자리가 강조되는 전통적인 일본 서체와는 달리 수평 획의 왼쪽 가장자리에 강조점을 두었다.



오카노는 손으로 그린 스케치와 제작 자료에 대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최초의 디자인이 제작 과정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하고, 사진과의 조화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가짜 광고물을 사용하여 그가 만들었던 모의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발표는 ‘와란’을 디자인하는 것이 얼마나 길고 힘든 여정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오카노는 ‘와란’으로 공모전에서 금메달을 받고 다시 일본 서체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발표 끝 부분에서, 그는 10년 안에 일본어와 라틴 서체의 조합으로서의 ‘와란’을 발매하는 것이라고 다음 목표를 밝혔다.

히라가나에 대한 나의 생각. 마사히코 코즈카


세미나 마지막 발표자는 1950년부터 실무에 몸담아 온 서체 디자인 디렉터, 마사히코 코즈카(Masahiko Kozuka)였다. 히라가나에 대한 그의 강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새로운 일본 서체 디자인 붐의 선봉이었던 ‘타이포스(Typos)’ 슬라이드로 시작되었다. 그는 타이포스 디자이너들 중 한 명인 야사부로 쿠와야마(Yasaburo Kuwayama)가 처음으로 타이포스를 라틴 알파벳처럼 가나 서체 패밀리로 상상했다고 지적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 간지와 가나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생각해야 하고 따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코즈카는 명조 간지와 가나가 한 단일체의 두 부분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 시대에 가나를 간지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본 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새로운 서체의 다른 중요성은 글자를 개발하는 데 있어 패턴을 만든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타이포스에서 각 히라가나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쪼개져 패턴을 만든다. 이것은 활자에선 불가능했다. 그는 간지 ‘波’에서 나온 히라가나 ‘は’의 예를 들었다. 그는 그 시대에 ‘は’를 세로획, 가로획 그리고 끝의 둥글게 휘어진 획 같은 다른 부분들의 모음으로 보는 것은 혁명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가나의 부분들을 모듈화하는 것이 적합한지 의문을 던졌다. 그는 모듈화는 제목용 서체에만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신 본문에 쓰일 가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본어로 글을 쓸 때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그러나 일본 책은 수직과 수평 조판을 가지고 있다. 히라가나는 원래 수직 조판을 위해 개발되었으므로, 그것을 수평 조판을 위해 옆으로 단순히 나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지금까지 아주 적은 서체들만 히라가나를 수평으로 쓰는 것을 위해 개발하는 도전을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

코즈카는 그의 디자인 컨셉인 (1) 웨이트, (2) 허리 위치, (3) 속공간, (4) 요소들의 형태와 특징, (5) 선의 품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손글씨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히라가나 ‘は’를 예로 들었다. 이 글자의 근원은 간지 ‘波’이기 때문에 왼쪽의 세로획은 물 수 변()에서 온다. 반면, 히라가나 ‘ほ’는 간지 ‘保’에서 온다.

이것은 왼쪽 세로획이 사람 인 변()을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 부수들이 같은 형태를 가지는 것이 적합한지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고려하여 그는 많은 예들을 제시하며 현대에 수평 조판을 위해 간지에서 나온 히라가나를 다시 디자인할 때 생각해야 할 점들을 위에서 언급한 디자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다.



코즈카는 다음과 같이 서체의 기능을 정의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1) 정렬된 선들을 만드는 것
(2)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3) 시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

그는 글자를 사용하는 그래픽, 편집 디자이너들이 서체를 고를 때에 필요에 따라 이 부분들을 기억하고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기사는 모리사와로부터 폰트클럽 게재 동의를 받고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 http://competition.morisawa.co.jp/news/20130801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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