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9_<디자이너 상식백과>

직장에 막 취업한 신입시절, 휴대폰에 뜨는 모르는 전화번호는 택배기사의 배송 안내나 잘못 걸린 전화였지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찾는 후배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열렬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싶은, 후배에게 사랑(?)받는 멋진 선배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보다는 랩실에서 컴퓨터를 끼고 살았던 나에게는 해결을 바라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밤새 과제를 하다가 모니터에 뜨는 기상천외한 에러 메시지라든가 아마도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해결이 안된 상황에 부딪혀 최후의 보류인 나를 찾았으리라 짐작된다.

 

바쁠 때 전화 걸면 귀찮기도 하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대충 얼버무려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름 좋은 선배이고 싶어 나도 모르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왜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지 의아했다. 학생 때야 사실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선배한테 묻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요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디자이너로 살아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책 <디자이너의 상식백과> 서문을 보면 그러한 상황이 이해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달라진 것이 그 원인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디자이너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점점 늘어나고 심지어 법무팀에서나 해결할 수 있었던 업무까지 수많은 업무를 해야 하니 어찌 질문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더 많은 업무를 스스로 진행해야 한다. 고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완성하는 것 이상을 원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드는 독특한 시각 스타일의 창조를 기대하며 디자이너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디자인 프로세스, 리스크, 결과물과 다른 분야와의 연관성, 디자인 아웃풋과 기술을 유리하게 판매하는 방법 등 다방면에도 심도 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 5쪽

이 책 목차를 보면 앞서 나에게 질문했던 후배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제작 등의 디자인 관련 내용과 마케팅, 법률, 조직 등 디자이너가 몰라도 되었던 일들까지 나열하고 있으니 법무팀 직원만큼은 아니더라도 디자이너로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편으로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이너와 업무를 진행해야 할 기획자들도 디자이너와 소통하기 위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내용으로 가득하다.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기본 원칙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과 이해는 여러분의 작업과 마인드를 엄격한 미학적인 틀에 국한시키지 않을 것이고, 점과 선, 면을 전적으로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 마음의 눈을 조율할 것이다.” – 11쪽

“간결성과 가독성에 맞춰 최적화된 수수한 기능성 폰트부터 만들어진 시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교한 시각적 기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예를 실은 이 장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된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71쪽

“전문 제본업체와 인쇄업체, 출판사들이 작업을 더욱 멋지게 만들 수 있도록, 또 본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값비싼 인쇄 실수를 피할 수 있도록 이 장에서는 다듬 재단(trimming), 누름 자국, 그리드 유형, 사전 인쇄 점검(pre-flight)부터 레이아웃, 편집, 색 관리까지의 팁을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 169쪽

“전문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며 작품을 보호하기도 하는 법률과 규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 275쪽

“디자인, 이젠 상상력 이전에 지식이다!”

이제 나에게 질문을 던질 후배들이나 동료들에게 우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볼 생각이다. 제목에 붙은 ‘상식백과’ 때문에 책 속 내용을 모르면 상식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 또한 이 책에 있는 내용 중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 10%도 안 되는 것 같으니. 

글. 땡스북스 김욱

질야 빌츠 Silja Bilz
독일의 베를린과 포츠담, 스위스의 바젤에서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PR을 공부했다.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유명한 인사들과 교류했고, Lynotype사(社)에서 일하며 새로운 서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젝트 매니저,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하이브리드 호환 서체 시스템(hybrid type system Compatil)의 작업을 한 바 있다. 최근에는 독일 국내외의 기업 및 단체들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술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정의태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독일 아우그스부르크의 HS-Augsburg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 시스템즈를 전공했다. 에이블 디자인, 오콘 커뮤니케이션즈, 마르시스 등의 벤처기업에서 일했으며 연세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서울디지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디자인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채재용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스튜디오 이끼, VAZO, 네오랩컨버전스에 재직했고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인제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는 모노클앤컴퍼니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성신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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