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5_<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외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이 책은 ‘세계의 가장 투쟁적인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건축계의 거장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고희를 앞둔 시점에서 발표한 첫 자서전이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17세 때 프로복서로 활약하며 한 경기마다 당시 대학 졸업생 초임의 30% 정도를 벌 수 있었지만, 체육관에 연습하러 온 유명한 프로복서의 연습경기를 보면서 자신이 그 정도의 기량과 회복력 등 앞으로 프로복서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바로 복싱을 포기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전력 질주하는 투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직이란 굴러가는 대로 놔두면 비대해지게 마련이라 나중에 문득 돌아보면 나를 위해 만든 조직에 나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 18쪽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 체험으로 아는 것은 같은 지식이라도 그 깊이가 다르다. 그 여행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았다.” – 67쪽

“물건 만들기는 끈기가 필요한 일이고 물건에 생명을 주는 귀한 일이며 물건을 접하며 살아가는 충실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 45쪽

“아무튼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으면 그게 무엇이든 도전해 보았다.” – 56쪽

그는 가르치는 선생님도, 의견을 나눌 동료도 없이 늘어질 수도 있는 자신을 재촉하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지 1년 만에 대학교 건축과 교재로 사용하는 책들을 모두 읽어 냈다. 그리고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작품에 큰 감명을 받고 작품집에 나온 스케치를 모두 외워서 그릴 수 있을 만큼 탐독하기도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은 그의 작업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결국 프로젝트를 실현으로 이끈 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라는 지극히 평범한 과정의 축이다.” -159쪽

“나는 ‘설령 시대가 저버린 기술이라도 그 한계를 규명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내자’라는 창조자다운 도전 정신이야말로 그 희대의 건축 조형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 168쪽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누구한테나 열린 수단이란, 바꾸어 말하면 남들과 차이를 드러내기가 힘든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171쪽

만약 운이 좋아서 또는 유능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면 그가 지은 건물에서 지금과 같은 노력의 흔적과 느낌을 얻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가끔은 직접 콘크리트를 뒤섞는 작업에 뛰어들고 어려움을 직접 부딪혀 해결해가는 동안 녹아 든 그의 땀이 있었기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서는 반드시 그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스물여덟 살 시절, 가진 것 없이 설계사무소를 열 때부터 ‘일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 217쪽

“이 책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다.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거듭해 온 이 무뚝뚝한 나의 자전을 읽고 한국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인생에 용기를 가져준다면 좋겠다. 생각의 자유를 잃지 않는 열정을 청춘이라 한다면 그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방법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다.” 

서른도 안된 나이, 자신의 아파트에 사무소를 만들었던 그의 말대로 이 책은 그저 성공담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을 덤덤히 적어 놓은 책이기에 그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 깊게 와 닿는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이 있고 힘든 일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작은 희망의 끈을 잡으며 다음 일을 생각했던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다시 투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글. 땡스북스 김욱 실장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년 오사카의 무역상 집안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어머니 가문의 대를 잊기 위해 태어나자 외가로 보내져 내내 외조부모와 살았다. 밖에서 하는 일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예절만큼은 엄격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독립심을 기르며 성장하였다.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되던 17살에 프로복서에 입문하였으나. 고교 생활이 끝날 무렵 당시 일본 권투계 최고의 스타였던 하라다 선수의 스파링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서 그는 자신이 물건 만들기에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시작하여 가구, 인테리어, 건축 등으로 점차 범위를 확장한 그는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집을 구입하고, 그의 도면을 수없이 베끼면서 독학을 시작하였다. 1964년 일본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자마자 그는 해외여행을 결심한다. 서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는 7개월의 기간 동안 유럽, 남아공, 인도, 필리핀 등을 돌아보고 왔다. 이후 자신의 사무소를 개설할 때까지 돈만 모이면 세계를 돌아다녔다. 전세계적으로 변혁의 분위기로 가득 찼던 60년대에 20대를 보낸 그는 1969년 거의 나이 28세에 그의 아파트를 건축사무소로 삼아 세상과 대면하게 되었다. 첫 데뷔작인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부터 그는 노출콘크리트로 건축을 하는데, 그에게 콘크리트란 자신의 창조력 한계를 시험하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건축의 재료를 콘크리트로 좁히고 구성도 기하하적인 형태를 고수한다는 원칙 아래에서 자신만의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콘크리트 작업을 하면서도 자연과의 조화, 인간과 삶의 공간, 주거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절제와 단순미로 표상되는 일본의 미의식을 표해온 그는 도심부의 주택과 상업건축을 넘어 미술관 등 공공건축으로 범위를 넓혀나간다. 미국의 예일대학,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1997년 도쿄대학 건축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2002년 미국 건축가협회(AIA) 대상 등 각종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건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세계 곳곳에서 도시와 문화를 연결하는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쇼팽의 겨울바람이 이 느낌이에요”
추운 겨울날 바람을 맞으며 아이는 쇼팽의 ‘겨울바람’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엄마, 바로 쇼팽의 겨울바람이 이 느낌예요. 차갑고, 날카롭고, 시원하고!”
그 아이는 엄마와 음악 감상실을 다녀와 한밤중에 음악을 들으며 엄마에게 말합니다. 
“우리 참 행복하지 않아요? 엄마와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서점에서 일할 수 있어 좋은 점은 책 만드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며 손에 책을 들게 만든다.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아들을 둔 아빠 입장이라는 공통점이 제일 크다. 그리고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왔다. 임후남 작가가 아이에게 ‘클래식 음악’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책을 만들었다고 하니, 나도 이 책을 읽고 내 아이에게 ‘클래식 음악’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 책의 장점은 잘 읽힌다는 점이다. 구성도 간결하다. 음악이 소개되면 바로 아이의 음악에 대한 상상이 나온다.

고요한 새벽 거대한 괴물이 땅을 탕, 치면서 일어난다. 
모든 것이 흔들린다. 작은 동물들과 새들은 이리저리 정신 없다. 
조용해지려다 다시 쿵! 다들 자기 일을 한다.
아침도 준비하고, 애들도 깨우고 쿵.
아이들은 밥을 먹고 밖에 나가 칼 싸움을 하며 논다,
챙챙챙!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쿵! 얘들아. 쿵! 와서 공부해라. 네. 쿵쿵쿵쿵! 탕탕! 퉁퉁! 
괴물도 일을 시작한다. 숲은 난리다.

자유로운 아이의 상상이 끝나면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엄마의 음악 이야기가 이어진다. 잘 아는 이웃집에 놀러 온 느낌이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고 싶고, 놀러 가면 아이도 좋아하고 배울게 많은 그런 집이다. 아이와 듣는 클래식 책이라고 해서 음악정보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꼭 한 번 보세요’, ‘음악상식’, ‘공연장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본문 사이사이에 등장해 클래식 이해에 도움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클래식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클래식 음악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책 속 그림을 그린 꽃 그림 작가 백은하 씨가 이 책을 읽고 비로소 ‘클래식의 흐름을 알았다’고 말한 데는 작가가 곡을 소개하면서 작곡가 연대순으로 목차를 구성한 섬세한 배려 덕분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인상, 잠깐의 만남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라고 말한다. 좋지 않은 첫인상으로 잘 알지도 못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은 물론 경솔한 일이다. 하지만 잘 모르지만 왠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꼈다면 그 느낌을 믿고 신뢰를 보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서점에서 만난 임후남 작가에게서 강한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졌고 그 기운 덕분에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에게 소개해주려 했던 친구 ‘클래식 음악’이 내 친구가 되었다. 좀 더 사귀어서 아들에게도 소개해줄 생각이다.

글.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

임후남
아이와 여행을 가고, 길을 걷고, 콘서트를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엄마.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출판국, 웅진씽크빅에서 기자 및 편집장을 지냈다. 펴낸 책으로는 정경화, 조수미 등 국내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인터뷰집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와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다.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재영
음악, 사진,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은 소년으로 현재 서울 목운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CBS소년소녀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 국립오페라단 <카르멘>, tvN <오페라스타> 등에 출연했다. 엄마가 글을 쓴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에 수록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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