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디자인 이야기.2_무사시노 미술대학 오픈 캠퍼스

 

글. 박지훈(무사시노미술대학, 일본)


6월 중순, 흐린 날씨의 일요임에도 무사시노미술대학의 정문 앞은 예술제라도 열린 듯 외부 방문자들로 붐빈다. 경비원들이 동원되어 정문 앞 정체 정리에 정신이 없고 인파의 분주함은 교내에 들어서까지도 계속된다. 방문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교복 차림의 고교생, 또는 학부모들도 다수 눈에 띈다. 저마다 한 손에는 대학 안내지도를 들고 자신이 지망하는 학과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분주함의 이유는 ‘오픈 캠퍼스(open campus)’라는 대학의 연중행사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 대학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정규행사다. 말 그대로 정해진 일정동안 캠퍼스를 개방하여 커리큘럼, 대학생활 등을 외부에 소개하는 이벤트다. 수험생들에게는 지망대학의 커리큘럼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예비 신입생들의 방문으로 활기를 띈 캠퍼스 풍경(위)
시각전달 디자인 학과 입시작품 설명회(아래)

오픈 캠퍼스의 모든 이벤트는 재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해 이루어진다. 대학 홍보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뿐. 학생이 주인인 만큼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직접 소개하는 형식이다. 고학년 학생들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두 달 전부터 운영 위원을 결성해 후배들을 소집하고 기획 방향을 잡아간다. 학과 커리큘럼 내에서는 절대로 접할 수 없는 디자인 전반의 기획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느냐?”라는 디자인 작업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 스스로 접근한다.


이벤트 폭은 매우 다양하다. 자신들이 입시시험에서 그렸던 입시 작품 전시부터 각 학년의 수업을 취재해 소개하기도 하고, 선배들에게는 성과물의 전시를 의뢰하는가 하면, 사회에서 활약하는 졸업 선배들을 학교로 초대하여 특별 강의를 부탁하기도 한다. 학과 시설의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학생생활의 상담조를 구성하는가 하면, 워크숍을 기획하여 수험생들과의 소통을 유도한다. 한편, 안내장을 만들고 포스터를 제작하며 사인을 구성한다. 홈페이지(www.musabi.ac.jp/open12/2012) 제작은 기본이다. 이렇게 4개월여간에 걸친 학생들의 기획만으로 대학 전체는 마치 커다란 잔칫상으로 둔갑한다.

무사시노미술대학 오픈캠퍼스2012 홈페이지(www.musabi.ac.jp/open12/2012)

캠퍼스 안의 여기저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사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워크숍, 수업 내 작업을 경험해보는 코너다. 현역 대학생들과 예비 미대생들은 함께 태마를 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손을 움직인다. 특별히 학점이 나오거나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작품을 통한 재학생과 수험생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진지하다. 지금껏 갈고 닦은 전공분야 솜씨를 선보이는 재학생과 미래 자신의 전공분야가 될 실기 과정을 미리 실습해보는 수험생 눈빛이 워크숍에서 주어진 한 장의 실습용 종이를 통해 훌륭한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엽서는 자신이 손수 제작한 첫 인쇄물로 좋은 기념이 될 것 같다.


각 학과가 운영하고 있는 커리큘럼은 과제전 형식의 전시 형태로 소개된다. 전시 목적은 물론 수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도 커리큘럼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이에 과제물이라는 결과물은 최고로 적합한 소재가 된다. 평소 수업에서 제작한 작품을 정리한 전시는 각 학과가 가진 커리큘럼의 종류, 특색은 물론 각 수업이 추구하는 디자인 목표의 방향성까지 보여주는 듯하다. 이 또한 전시를 목적으로 한 작품이 아닌, 일상의 제작물을 모은 전시이기에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아닐까 싶다.

공예공업 디자인 학과와 시각전달 디자인 학과 워크숍 풍경(위)
시각전달 디자인 학과 실크스크린 체험과 작품(아래)

시각전달 디자인 학과 과제 전시실(위)
유리 공방 제작풍경(아래)

실기 위주 학과는 전시물과 함께 실습과정을 소개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금속 공방에서는 금속가공을 통한 공예품 제작이 이루어지고, 목공 공방에서는 목제 가공의 전반적인 작업이 분주하다. 유리 공방에서는 화로에 달군 유리를 불고 가다듬는 작업을 반복한다. 한편 패션쇼의 시작을 기다리는 이들은 유원지의 인기 놀이시설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처럼 긴 줄을 만들어 입장을 기다리는가 싶더니, 결국 모델들은 패션쇼를 끝낸 후 담당 의상으로 교내를 퍼레이드 한다.

 

학과과제 외 활동으로 매년 진행되는 오픈 캠퍼스 행사에는 묘한 매력과 의미가 있다. 디자인 교육에서 좀처럼 가르치기 어려운, 스스로 움직여 소통하는 디자이너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어찌 보면 재학생이야말로 수험생 시절의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인 한편, 앞으로의 디자인 활동을 향한 기대감, 도전 의식에 의한 발 구름이 매년 오픈 캠퍼스 형태로 결실을 맺는게 아닐까 싶다. 이들 역시 수년 전 오픈 캠퍼스를 방문했으며 당시 그들의 눈에 들어온 재학생들의 모습은 구름 위의 존재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보고 있노라면, 열심히 갈고 닦은 디자인 기획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맞이하는 재학생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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