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2_<어바웃 디자인> 외

디자인에 관한 담론은 늘 있어왔다. 학생시절 열정적인 관심에서부터 디자이너로 현업에서 애증의 작업을 마무리하기까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하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인 디자이너의 모범답안에서 깨달음을 찾기도 하지만 늘 모호한 기준이라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면 한참을 돌아서 얘기하기 마련이다.

“디자인 실무/교육, 어느 곳에서든 디자인은 비즈니스로 정당화되고 있으며 그 정당성은 암묵적 애국심과 애사심이 뒷받침한다. 그래서 개인의 일상생활을 불행하게 하는 디자인의 역기능이나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아예 무감각하고 무지하다.” – 8쪽

 
 

“디자인이 보편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갑자기 디자인이 대수롭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이 더 풍부해질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여겨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10쪽

 
 

“온라인 저널에서 전방위적인 글을 써온 디자이너 마이클 비럿 Michael Bierut은 한 에세이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디자인을 손꼽으라고 할 때 곧잘 클립 같은 예를 드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예컨대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는 물음에 ‘어린아이 웃음소리만큼 아름다운 노래가 또 있을까요?’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20쪽

그러나 이 책의 추천 글과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시대는 디자인의 담론을 통과해 일상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컴퓨터의 발달로 누구나 (기능적인 의미의) 디자인을 할 수 있을 만큼 앞서가고 있다. 그 동안 헤매던 디자인의 의미를 찾기도 전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적 디자인이 먼저 인식되고 있다.

“좋은 제품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자이너 이브스 베하 Yves Behar의 입장에 따르자면, 바비 인형은 좋은 장난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정작 바비 인형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어느 디자인 이론가의 주장처럼 어린아이들에게 성의 구별을 학습시킨다는 점이다.” – 27쪽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가 어린이를 주제로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어린이용’또는 ‘어린이를 위한’물건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 ‘여성용’ 물건이 탄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요자 범위를 늘리기 위한 전략에서 출발했다.” – 31쪽

 
 

“인간의 몸이 지닌 기억은 기술의 독주에 제동을 건다. 물건 자체는 기억에서 희미해져도 그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는 사람들 몸에 스며들어 있어서 디자인에 이른바 경험이라는 차원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 35쪽

디자이너로 살아가는데 혼란스러운 시기다. 그리고 그런 까닭인지 요즘 주위에서 기본으로, 본질적인 디자인으로 돌아가자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보다 내용과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 트렌드로 떠오르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장식적이든 기능적이든 다시 디자인에 대한 담론은 계속된다. 삶에 반영되는 시대의 변화, 그리고 그러한 삶에 밀접한 일상의 디자인은 소비자의 가치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모호할 수 밖에 없을까?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그다지 관심 끌 만한 것이 아니면서 비주류로나마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미천한 사물에게도 일말의 생존 본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섬뜩하기도 하다.” – 38쪽

 
 

“믹:일을 많이 하면서 돈도 못버는 전공이라면 비싼 등록금 내고 4년, 6년씩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뭐죠? 모두 디자이너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알았다! 고급 소비자를 양성하는 거군요.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죠. 김: 아무렴 대학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 161쪽

길게 말을 끌어왔지만 한 가지 대안적인 시선으로 이 책 <어바웃 디자인>을 소개한다. 저자 김상규가 디자인 정보를 소개하는 웹 미디어 <디자인플럭스>에 연재했거나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은 책이다. 우리 주위에 널린 사물들에서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워낙 유연한 개념이어서 때로는 스타일을, 때로는 과정과 행위를, 때로는 오브제 자체를 염두에 둔 채로, 말하는 사람의 맥락에서 멋대로 적용하곤 한다. 한때는 디자인이 특정한 집단의 특정한 활동으로 인식되다가 순식간에 ‘디자인은 모든 것’이라는 막연한 범위까지 부풀려져서 정치인도 공무원도 디자인을 정의하고 평가하는 지경이 되었다. -중략- 하지만 여전히 대중은 디자인 주체에서 빠지고 소비자이자 구경꾼으로 남아 있다.” – 166쪽

 
 

글. 땡스북스 김욱 실장

저자ㅣ김상규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와 국민대학교 대학원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주)퍼시스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로 〈Droog Design〉, 〈한국의 디자인〉, 〈Laszlo Moholy-Nagy〉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사)커뮤니티디자인연구소장, (재)한국디자인문화재단의 정책연구팀장 겸 사무국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번역서로 『사회를 위한 디자인』(시지락), 『디자인아트』(열화당), 공동 저서로 『한국의 디자인02』(디플),『& Fork』(Phaidon press) 등이 있다.


호기심 많고 모험을 즐기며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40명의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그들의 디자인적 교류를 통해 작업을 할 때 어떤 곳에서 영감을 받는지, 어떠한 작품들로 표현되는지,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영감의 원천을 찾고 즐기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나는 책을 많이 읽어요. 물론 TV를 안 보니깐 가능하죠. 난 TV를 싫어하거든요. 물론 TV에서 영감을 받거나 뭔가를 찾아내는 사람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난 아니죠. TV를 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난 가끔 갤러리에도 가요. 그리고 과학 박물관은 꼭 가려고 노력하죠. 그곳엔 뭔가 특별한 것이 숨어 있는 것 같거든요. 뭔가 할 만한 게 있고, 뭐든 새롭게 해볼 만한 요소가 숨어 있죠. 현재 내가 과학 박물관에서 보고 온 걸 응용한 프로젝트가 2개나 있어요.” – 94쪽(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인터뷰 내용 중)

이 책에 인터뷰가 실린 40명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어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폰트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40인의 독특한 개성과 다양한 심미안을 보여주는 자유로운 소통과 대화를 통해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성공을 위한 기본적인 과정들에 대해 알 수 있다.

 
 

“1903년에 모리스 벤튼이 디자인한 프랭클린 고딕체는 19세기 서체의 재해석이죠. 앨런 헤일리가 말하길, 벤튼의 뛰어난 점은 바로 하나의 서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페밀리화시켰다는 점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아는 한 서체의 페밀리화는 벤튼이 처음이에요. 1980년 빅터 카루소가 프랭클린 서체를 ITC(International Typeface Corperation)를 위해 새롭게 다듬었고 그 후에 데이빗 버로우가 추가했죠.

 
 

“자, 이제 ‘영감’을 어디쯤에 넣어 줘야 할까요? 그렇다면, 폰트를 새로 정리하라고 영감을 준 사람이 있을가요? ITC의 제기 발랄한 컨설턴트들일가요? 카루소와 버로우에게 서체 패밀리를 다듬으라고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일까요? ITC에서 다듬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영감을 얻어서’ 스스로 쓱싹 써버린 걸까요? 내가 보기에 그들이 한 작업은 19세기의 산세리프체에 대한 지식이 기반이 되어 이루어진 거에요. 적절한 응용과 그들의 예술적인 판단과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체 패밀리가 완성된 거죠.” – 132쪽(도열드 영 인터뷰 내용 중)

각 디자이너들은 아우디, 나이키, 페리에, 유나이티드 항공처럼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거대한 기업들과 작업을 하며, 그 곳의 클라이언트들에게 큰 신뢰를 주며 함께 작업하고 있다. 주어진 일에 대해 클라이언트의 생각과 그들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함께 만들어 나가며 주제에 가장 적합한 완성물을 만들기 위한 자신들의 노하우를 영감이라는 주제에 맞게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간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을 때, 무조건 믿고 지지할 수 있을 정도의 설득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만약 압박에 눌린 즐거움이 없다면 도대체 왜 하겠어? 알잖아. 난 디자이너가 아냐, 난 아무 것도 재미있지 않아.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신이 나지. 특히 클라이언트한테. 나는 사람들이 산책하러 가는 이유가 딱 하나라고 봐. 꼭 산책해야 한다는 영감을 받아서 하는 건 아니지. 단지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거야.

만약 내가 당장 자전거를 타고 싶어 죽겠다고 치자. 이유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야. 하지만 실은 일을 하기 싫어서 그런다는 걸 스스로는 너무 잘 알고 있거든. 솔직히 내가 자전거를 몇 시간 타고 온들 퍽이나 영감을 받겠다. 엉덩이 아프지, 팔 아프지, 숨 헐떡거려야 하지. 아니면 해변을 따라 한참을 산책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영감은 못 얻어.” – 22쪽 (에릭 스피커만 인터뷰 내용 중)

디자이너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작가 맷 패시코우(Matt Pashkow)는 이렇게 말한다. 성장이란 새로운 경험과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합쳐지는 것이라고.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이 배우고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팁들을 아래와 같이 공개했다.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은 문제 자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결국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문제해결사이다. 

둘째, 함께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실성 있게 다가가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영감을 줄 수 있으니깐. 

셋째, 압박이나 위험의 순간이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용하자. 초점만 잘 맞춘다면 프로젝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끔씩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지만 우린 모두 예술가이니까!” 

자료제공. 시드페이퍼

저자ㅣ맷 패시코우(Matt Pashkow)
디자인 분야에 20년간 몸담은 디자인 전략가이자 교육자. 198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 서비스국에서 필름 판에활자를 조판하면서부터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3년 회사를 설립한 후, 디지털 숲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중이며 <플레이보이> 의 브랜드 확장과 함께 존 바바토스의 상품과 페리에의 광고를 디자인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그래픽 아트 협회의 로스앤젤레스 지부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디자인 교육자로서 UCLA 사회 교육원의 유명한 비주얼 아트 자격증 프로그램에서 로고 디자인과 디자인ll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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