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2018>을 다녀와서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 A는 매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를 찾는다.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고, 아기자기한 굿즈를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참가 부스가 많은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750명의 작가가 참가했다. 4회를 맞은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2018(이하 서일페)은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코엑스 D홀에서 열렸다.
페어 장소로 들어서는 길목에 많은 사람이 지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더운 날씨 탓일까 싶었지만, 취재를 끝내고 나오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방 들여다보기
잘 꾸며진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보는 느낌은 어떨까? 처음 가본 서일페의 느낌은 무수히 많은 작가의 방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어떤 방은 신기했고, 어떤 방은 귀여웠고, 어떤 방은 재치 있었다. 물론, 꼭짓점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면을 꾸민 작은 공간이었지만 각각의 방은 개성이 넘쳤다. 오롯이 작가의 취향으로만 꾸며진 부스 벽에는 보통 작품이 걸려 있었고, 매대에서는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참가 부스들의 특징

기업 부스는 주로 제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이벤트를 열었다. 와콤 태블릿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홀베인 물감으로 채색을 해보고, 파버카스텔 펜을 사용해보는 사람들로 붐볐고 해외 디자인 서적은 할인가로 판매되었다. 각 부스에서는 SNS 팔로우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계정을 팔로우하면 스티커와 같은 작은 선물을 나눠주었다.

 

 

그림을 그릴 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나 좋아하는 대상을 그려서인지 그림의 소재는 주로 동물과 인물이 많았다. 그 중, 동물은 고양이가 압도적이었다. 통통한 고양이, 사람 같은 고양이, 길고양이 등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또한 캘리그래피 작가들도 눈에 띄었다. 꽃말을 캘리그래피로 적어 꽃과 함께 그려낸 작품, 그림의 빈 곳을 채색이 아닌 글자로 담아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독특한 굿즈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물고기 덕후인 것 같은 Sally 작가는 해양생물을 드로잉하여 엽서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골격 염색 표본’이라는 소품이 돋보였다. 과학실에 있을 법한 표본이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로 놓여 있었다. 실제 해양생물이 들어있는 이 표본은 수족관, 양어장 또는 물고기 판매점에서 버려지는 폐사어를 모아 몸속에 뼈를 염색하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과학 표본의 거부감을 없애고 교육 콘텐츠로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획 부스의 특별함
서일페가 시작되기 전, 100여 팀이 참가한 기획 부스 공모전에서 세 팀이 입선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팀은 <IN THE FLOWER>였다. 부스 전체를 꽃이 가득한 숲으로 꾸며 놓았는데,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활용하여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촉촉한 흙을 밟는 것처럼 푹신함이 느껴졌고, 생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향기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풀벌레 소리가 실제로 숲에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플로리스트가 함께 기획한 이 부스는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인물 그림과 꽃으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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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인터뷰

실질적으로 페어가 작가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했다. 리소프린팅 작품을 만들고, 스튜디오 프링크를 운영하는 이연옥 작가에게 서일페에 참가하게 된 계기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작업실에만 있으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페어에 와서 만날 수 있어요. 페어가 끝나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요. 호감 가는 스타일의 작가분을 만날 수도 있고요. 이번에는 AOI(Association of Illustrators)협회 영국 작가분들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서 상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일러스트레이션과 관련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자리인 동시에 프리랜서 작가들에게는 적당한 긴장감이 부여되어 작품활동을 부지런히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페어가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기회의 장이 되는 것 같다.

 

 

아쉬웠던 점

각양각색의 부스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탐미하고 싶었지만, 부스 간 간격이 좁아서 여유롭게 볼 수는 없었다. 전체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부스를 설치했던 탓일까? 붐비는 구역에서 사람들은 기차놀이를 하듯 한 줄로 서서 이동해야만 했다. 많은 인파 때문에 페어 첫날에는 입장이 지연되어 불편을 겪은 사람들의 항의가 있었고, 서일페 공식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사과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취재를 마치고 나니 다리가 욱신거렸다. 평소 운동량에 비해 넓은 공간을 걸은 탓도 있겠지만, 홀에 앉을 공간이 거의 없었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휴식 공간이 있었으나 협소해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지 않고, 한 곳에만 치우쳐져 있다 보니 구경하다가 그곳으로 가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왜 입구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너무 많은 부스가 있다 보니 길을 잃기도 하고, 리플렛을 봐도 글씨가 작아 찾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주제별로 부스가 묶여 있었다면 동선이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일렬로 쭉 배치되는 것보다 그림의 소재나 작업방식별로 공통된 부스끼리 모여 있었다면, 찾기도 편하고 선호도에 따라 계획적으로 부스를 방문하여 혼잡함을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좀 더 관람자 입장에서 기획하면 좋았을 부분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도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재능있는 국내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내년에는 미흡했던 점들이 보완되어 더욱 사랑받는 페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FONTCLUB 에디터 최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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