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이포그라피(Modern Typography)의 대가, 얀 치홀트(Jan Tschic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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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4월 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서체 디자이너, 얀 치홀트.

당시 라이프치히는 2차 대전 전까지 독일의 인쇄업·출판업의 중심지로 400개 이상의 출판·인쇄 회사가 있었으며, 얀 치홀트의 아버지 또한 레터링 아티스트였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장차 타이포그라피의 대가가 될 그의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활자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유년기를 보낸 얀 치홀트는 라이프치히 아카데미에서 래터링을 공부하며 서체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살이 되던 해, 바이마르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전시회를 관람하고 뉴 타이포그라피(Modern Typography)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후일 그는 “21세의 경험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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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럽을 시끄럽게 하던 모던 예술 운동가들과 다양한 교류를 쌓아가던 얀 치홀트는 26세 때 <뉴 타이포그라피(Die Neue Typographie)>라는 저서를 출판한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최초의 타이포그라피 교본이기도 한 이 책을 통해 그는 전통적인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공격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타이포그라피, 즉 모던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운동을 개진했다.

타이포그라피의 본질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정보 전달의 명료함이라는 이 운동의 메시지는 당시 모더니스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서체 디자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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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더니즘에 대한 나치의 박해로 인해 스위스 바젤로 이주한 1933년 이후, 뉴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그의 태도는 180도 뒤바뀐다. 바젤에서 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로만, 이집션 스타일의 서체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한 그는 뉴 타이포그라피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그리고 시작적 개혁을 주창하는 뉴 타이포그라피의 기조가 마치 파시즘과도 같다는 회의에 빠지고 만다. 

결국 전통 타이포그라피로 되돌아간 그의 연구는 1967년 제작한 ‘사봉(Sabon)체’로 궁극적인 완성을 이룬다. 사봉체는 조판 기술이 달라도 모양이 달라지지 않았으며, 기존에 있던 게라몬드체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가독성은 더 우수한 본문용 서체였다. 이후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브래드버리 톰슨(Bradbury Thompson)이 디자인 한 위시번 대학 성경, 보그의 본문 서체 등으로 사봉체를 사용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서체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 타이포그라피로 회귀한 얀 치홀트의 행보는 그에게서 뉴 타이포그라피를 배워나갔던 제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막스 빌(Max Bill)이 얀 치홀트의 강연을 비판한 글을 잡지에 기고하면서 시작된 타이포그라피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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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생을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바친 얀 치홀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런던 명예왕실 산업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라이프치히의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FONTCLUB 에디터 황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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