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 <커버>
디자인 쪽 일을 하거나 아름다운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pinterest”라는 웹에서 한 번쯤은 이 사람의 표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습관처럼 켜놓고 보는 이 웹사이트에서 피터 멘델선드의 표지를 만나게 되었고, 수집하며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실물로 보고 가지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커버 Cover : 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
아트북스 / 피터 멘델선드 지음, 박찬원 옮김
작년 겨울, 동시에 두 권의 표지와 마감을 진행하면서 꽤나 애를 먹었던 기간이 있었다. 처음 생각했던 일정처럼 일은 풀리지 않았고 이미 약속해놓은 일들과 다른 일정이 겹치면서 첩첩산중으로 꼬여갔다. 계속된 시안 재요청과 내 작업속도를 그동안 과하게 평가했던 것인지, 물리적인 시간마저 따라주지 않아 딱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평소 일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받더라도 그때 그때 고민하고 털어버리는 성격인데,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백지가 되어 아이디어는 풀리지 않았고, 표현 방식이나 구성 등등 ‘디자이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바보가 되어, 일분일초 위가 꼬이는 기분으로 한달을 끙끙 앓았다.
작업을 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계속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모든 일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좋은 콘텐츠를 내가 아쉽게 만들어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책으로 나올 때까지 심장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 때 일을 하면서 당연하게도 야근을 했었고, 사무실 근처 시끄러운 음식점 소리와 클럽에서 나오는 소음과도 같은 음악을 들으며 읽고 또 읽은 책이 이 <커버>였다.
디자인 쪽 일을 하거나 아름다운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pinterest”라는 웹에서 한 번쯤은 이 사람의 표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습관처럼 켜놓고 보는 이 웹사이트에서 피터 멘델선드의 표지를 만나게 되었고, 수집하며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실물로 보고 가지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책이 나와 서점에 들어왔을 때, 멋진 작품 모음집이란 생각이 되었다. 북 디자인에 오래 종사하고 일에 애착을 느끼며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태도로 일을 대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는 전업 피아니스트에서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꾼지 11년인 북디자이너였다. 11년이란 시간은 내가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히 긴 경력의 시간이지만, 30대의 피아니스트에서 전업을 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고리타분하게도 당연히 디자인 일’만’을 오래 해왔을 것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어느새 11년차의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고, 그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는 나와 여러면에서 많이 달랐다.
P.12
11년의 작업. 바로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이다. 책 표지 디자이너로 일해 온 11년이라는 세월. 내가 이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느껴진다. 내가 처음 이 독특한 직업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10여 년은 고사하고 한 달도 못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한편, 책 디자이너로서 보낸 11년은 내가 완전히 다른 훈련을 하며 보냈던 30여 년의 세월에 비하면 눈 깜박할 사이인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책 표지를 만드는 일을 하기 전에 나는 매일 피아노를 쳤다. 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다.
저자는 전업 피아니스트로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어져 직업을 바꾸려고 하는 중, 아내의 “디자인은 어때?”라는 말 한마디로 북디자인에 입문하게 되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요구되는 많은 재능과 현실에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던 그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가 신선했다. ‘어떤 경우이든 디자인은 쉽다’라는 그의 말은 내겐 약간 놀라웠다. 내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저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 말이 주문과도 같다고 하는데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란 덧붙인 말과 함께 서문 전체를 읽고 나면 그가 느꼈을 무게감이 느껴진다.
P.18
어떤 경우이든, ‘디자인은 쉽다'(그리고 책 재킷은 사소하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독자들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믿는 것이 내게 유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자인의 단순성을 믿음으로써 나는 과도하게 신경증적이지 않고 불필요하게 복잡하지도 않은 디자인 작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써 그렇게 된다. 나는 피아노 앞에서는 그런 마음 상태를 결코 유지할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하는 것.
그는 특정 장르만을 국한하지 않고 고전, 현대문학, 만화, 논픽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북디자인을 해왔다. 그런 그의 북디자인은 독자들과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저자들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이 되어있다. 요 네스뵈의 말에 따르면 “문화적 레퍼런스와 시각적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에 대한 보편적 출발처럼 느껴지는 디자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피터 멘델선드의 디자인으로 모두가 책을 출간하는 행운을 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얼마나 큰 찬사인가. 이런 찬사는 그가 단순히 ‘재능’있는 북디자이너가 있어서가 아니다. 내성적인 그는 위에서 ‘디자인은 쉽다’라고 자기 주문을 하면서 한다고 했지만, 그는 정말 이 일을 즐기고 몰두할 줄 아는 적극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북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책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그는 ‘독서’를 강조한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독서’는 남다르다. 해당 도서를 읽고 또 읽고, 해당 작가나 관련 책들을 읽고 그간의 판본들이나 컬렉션을 보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시안도 끊임없이 작업하며, 단 하나의 표지를 찾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쏟아내며, 출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작업을 하며 장황한 아이디어들을 펼치며 머리속으로만 갖지않고 만들어낸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힘들다고 끙끙 앓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P.42~43
나는 늘 추상적인 재킷이 좋았다(특히 알빈 러스티그, 조지 솔터, 존 콘스터블의 작업들). 내가 처음 이 분야의 일을 시작했을 즈음에 추상적인 표지는 더 이상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고, 특히 고전 작품들을 위한 추상 표지는 없었다. 대부분의 책 재킷은 모사를 하거나 사진을 이용한 것이었고, 나는 우리가 문자 그대로의 해석과 과도한 구체성 방향으로 너무 많이 경도된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기 아주 좋은 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이런 도스토옙스키 표지들을 만들었다.
…
이 표지들로 해서 수문이 열려 이와 같은 표지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내가 처음으로 이 시리즈를 만든 이후, 시리즈 디자인을 이렇게 추상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접근하는 일은 상당히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모방=칭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어디서나 이런 스타일의 디자인을 볼 수 있게 되니 심술궂게도 나는 사진과 모사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느낀다.
P.57
<더블린 사람들>은? 에블린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거리를 침범해오는 저녁의 색깔, 그녀 콧속으로 들어오는 “먼지 쌓인 커튼”의 냄새. 애러비의 하루가 늦어지는 것의 피곤함의 색깔. 너무 늦어짐……후회의 색깔은 무엇일까? 추위의 색깔, 추운 밤하늘, 눈이 약하게 내리고 아침은 다가오고. “그 전날 밤이 지나고 맞는 아침의 푸른 시간”이라고 한다. “그들이, 처음에는 주인이, 그러고 나서는 손님이, 조용히 어둠 속에서 그 짙은 어둠에서 나왔을 때, 그들과 마주한 광경은……눅눅한 밤빛푸르른 열매와 함께 매달린 별들의 하늘나무였다.” 밤빛푸름.
“콧물초록, 푸른 은빛, 녹슨 색: 색깔별 표시.”
P.89~90
우리 책 재킷 디자이너들은 하나의 텍스트를 표현하는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를 텍스트의 변변찮은 장식가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질문 하나가 지속적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이 전체라는 것이 내러티브 그 자체, 문자 그대로 세세히 표현된 그것인가, 아니면 그 내러티브가 가리키고 있는 것, 즉 숨어 있는 더 커다란 의미인가? 그 말은, 즉 <롤리타>의 경우, 우리가 할 일이 ‘가장 중심이 되는 어린 소녀와 나이든 남자의 성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더 깊이 천착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가, 하나의 원칙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면 책 디자인이라는 우리 일이 얼마나 빈곤한 것이겠는가? 우리가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책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번역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 일은 정말이 슬픈 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재킷 역시 슬픈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선택된 표지 뿐 아니라 디자인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B컷의 디자인들, 그리고 편집자나 마케터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 등등 그가 11년간 겪었던 일련의 작업들을 훌륭하게 풀어놓았다. 번역이 약간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지만 유머러스함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그의 이 포트폴리오는 관련 직업인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다. 또한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책일 것이다. 하나하나 아름다운 일련의 표지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일일 테니까 말이다.
저자: 피터 멘델선드
A. 크노프 북스의 부副 아트 디렉터. 오랫동안 북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로 일해왔으며 그의 디자인은 많은 저자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대표적인 책 표지로는 ‘밀레니엄’ 시리즈가 있으며, 조이스·카프카·도스토옙스키·시몬 드 보부아르·푸코 등의 작품 전집, 마틴 에이미스·톰 맥카시·벤 마커스·요 네스뵈·제임스 글릭 등 수많은 현대 작가들의 책표지 또한 디자인했다.
이 책에는 그가 디자인한 표지로 세상에 선을 보인 수많은 책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공개하는 창작방법 모음, 재킷 스케치, 직접 만든 일러스트레이션, 거절당한 표지시안들도 실려 있다. 이와 함께 표지 작업과정에 대한 멘델선드의 단상들, 그가 작업했던 책의 저자들이 기꺼이 기고한 글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커버』는 미국 출판계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 많은 표지를 디자인하는 북디자이너 중 한 사람에 대한 완벽한 소개서이자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는 그의 유려한 솜씨를 보여주는 탁월한 디자인 모음집이다. 그 자신이 열정적인 독자이기도 한 피터 멘델선드는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미지를 그려내는가에 관한 책 『독서할 때 우리가 보는 것What We See When We Read』을 쓰기도 했다. 그는 맨해튼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역자: 박찬원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가씨와 철학자』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빛의 사슬』 『솔로몬의 카펫』 『홈메이드 라이프』 『네 번의 식사』 『나는 말랄라』 등이 있다.
<글, 사진: 땡스북스 김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