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14_<그 남자의 자동차> 외
운전면허가 차량의 유무에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성인이 되면 갖고 있어야 하는 라이센스 처럼 인식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남자라면 누구나 키만 건네 받으면 아무리 좁은 길에서도 척척 주차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일반적인 듯 하다. 가끔 서점 근무를 하다 보면 맡겨둔 열쇠로 주차된 차를 빼달라는 손님들이 있다. 마음 같아 서는 당장이라도 나가서 빼주고 싶지만 내겐 앞에서 말한 그 흔한 ‘운전면허’가 없다. 키를 받아 들고 운전을 못하니 직접 빼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 무척 불친절한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면허가 없다고 해도 차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차에 몸을 싣고 어딘가 떠나는 것도, 복잡한 기계 구조와 기능적인 디자인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기계가 아니라 감정이 묻어 나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그 남자의 자동차> 머리말에서도 말하듯 “인간 수컷들의 원초적 욕망”일 수도 있겠다.
“인간 수컷들이 바퀴 네 개 달린 물건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는 정확한 이유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강력한 힘을 추구하는 원초적인 욕망, 누구보다 빨리 달려 사냥감을 쫓아야 하는 수컷으로서의 생존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기계인 데다 생김새까지 여체를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구성되어 종족 번식의 본능까지 만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 7쪽
그 동안은 면허가 없기 때문인지 차를 좋아하더라도 특별한 소유욕은 없었는데 많은 짐을 날라야 하거나 장거리로 이동할 때가 많아지면서 자가용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가끔 뉴스에 나오는 신차 소식을 보면 (살 것도 아니면서) 어떤 모델을 고를 것인지 고민해보는 소위 ‘장바구니 담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면허는 둘째고 당장 차부터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견물생심이다. 그렇지만 무작정 갖고 싶은 ‘드림카’가 아닌 수입에 맞춰 견적을 내보게 되는 ‘현실적인 드림카’도 우선 외형이 번듯해야 마음이 가는 것을 보면 당장 급한 것은 아닌가 보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를 고를 때, 자신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뭘 보고 골라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설문 조사에서 ‘성능’이나 ‘연비’와 같은 뻔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 24쪽
“자동차 마니아란 출력 수치를 외우고, 해외 자동차 브랜드의 라인업을 줄줄 외우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차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는 적어도 그런 ‘마니아’보다는 차를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 27쪽
책 내용처럼 주위에서 차를 고르는 기준을 보면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당연히 성능과 연비가 중요한 기준 1순위다. 최근 이슈로 많이 회자되는 국산차 연비 문제도 그러한 현실을 잘 반영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차를 구입하는 목적이나 기준이 불분명하니 수치에 의존해서 구입하게 되고 업체는 그런 수치를 왜곡해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 아닐까?
“자기네 가게 간판을 고를 때의 컬러 감각과 자동차를 고를 때의 컬러 감각을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딱 좋을 텐데.” – 31쪽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어떤 이유를 가진 디자인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풍겨 나온다. ‘더 빠르고 더 높이 날아서 적진에 더 정확하게 미사일을 쏜다’는 명확하고 잔인한 이유를 갖고 태어난 전투기가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띠는 것과도 같다.” – 45쪽
운전면허가 없는 것이 차에 대한 소유욕도 줄이고 불가피한 운전이나 주차에서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핑계가 되어서 나름 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핑계는 이 글을 쓰면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여러 이유로 학원도 등록했고 더구나 며칠 전에는 필기 시험도 (꽤 높은 점수로) 합격했으니 말이다. 다만 당장은 ‘드림카’는 물론 ‘현실적인 드림카’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면허시험이 간소화된 탓에 도로 위에 올라가려면 많은 시간을 연습해야 할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여러 번 차를 고르는 기준이 바뀌고 있어 꿈과 현실의 괴리감에 한참은 고민해야할테니 말이다.
글. 땡스북스 김욱 실장
저자. 신동헌
미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 로큰롤 밴드에 관심을 두어 인디밴드 활동을 하며 모터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 음악보다 모터사이클에 더 심취해 모터링 저널리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모터사이클 전문지 <모터바이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일간지 <스포츠투데이>의 모터스포츠 담당 기자, 남성지 <에스콰이어>의 피처 에디터를 거쳐 현재 남성지 <레옹>의 부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바퀴 여섯 개를 다룰 줄 알아야 진짜 남자’라고 믿는 그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에 관한 편견을 없애고 더 많은 사람에게 진정한 재미를 알리기 위해 글 쓰는 일을 택했다. ‘까진 남자’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 파워블로그 조이라이드 (http://blog.naver.com/joyrde)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자가 읽어도 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를 글쓰기 모토로 하고 있다.
‘오늘은 뭘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개성있는 일러스트와 식욕을 돋우는 사진들로 가득한 <요나의 키친>이다. 매일 자신의 음식을 맛볼 누군가를 떠올리며 온 마음을 담아 요리하는 요나의 키친을 만나보자.
저자는 10대에 ‘왜 먹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찾아온 섭식장애로 고통을 받았으나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대를 다니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요리를 배웠다. 그러면서 음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점차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낀다.
<캘리포니아 라이스>
:밥 1공기, 식초 1큰술, 맛김 2장, 아보카도 1/2개, 훈제연어 3~4장,
대파 5~7cm, 쪽파 약간.
[A] 마요네즈 2큰술, 간장 1큰술, 간 마늘 1/2작은 술
1. 따듯한 밥에 식초를 넣고 잘 비벼서 접시에 담는다.
2. 밥 위에 맛김을 잘게 찢어 골고루 뿌린 뒤 훈제연어를 잘 펴서
그 위에 올리고, 한입 크기로 자른 아보카도를 올린다.
3. 대파는 얇게 썰어 물에 10~20분 가량 담가 두어 매운 향을 뺀다.
4. [A]를 전부 섞어 밥위에 뿌리고 대파롸 잘게 썬 쪽파로 장식한다.
“아보카도는 숙성 정도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신맛이 전혀 없고, 달지도 않아서 담백한 맛이 나는 과일이다. 그런 연유로 채소처럼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도 좋다. 어떤 재료와 조합하느냐에 따라 천 가지 맛을 내는 아보카도는 마치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흰 쌀밥 같다.” – 44쪽
“십 년 전 흥미롭게 읽던 요리 만화책 대부분이 일본 작품이었던 걸 보면, 내가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도 이들 만화책의 영향이 제법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십 년 뒤 나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요리를 하고 있을까 은근히 기대도 된다. 삶이란 정말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비행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 45쪽
<요나의 키친>은 음식 재료 별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재료마다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눈이 호강하는 음식 사진을 보고 있자니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일본 요리학교에서 요리와 더불어 식문화, 테이블 매너, 스타일링 등 음식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섭렵한 요나의 사진들은 이나영 작가의 일러스트와 더불어 이 책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3.11의 지진은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짙은 자국을 남겼다. (중랙) 살아간다는 것은 이 문제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나만의 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감정 기복이 심한 나에게 초콜릿은 대지진이 선물로 주고 간 평생의 보약일지도 모른다.” – 103쪽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 레시피 나열이 아닌, 요리에 얽힌 사연들과 일본 유학 시절 소소한 요나의 일상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매일 요리를 만들며 내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혹시 이 요리를 맛본 당신도 나처럼 인도를 추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인도여행을 가서 내 요리를 떠올리지는 않을까? 부디 내 요리로 인해 당신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기를 꿈꿔 본다.” – 68쪽
눈이 즐거운 식사를 매일 준비하기는 어렵겠지만, <요나의 키친> 레시피를 펴놓고 내 가족과 친구를 위한 정성 어린 요리를 준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망쳐도 좋으니, 우리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자고. 요리를 통해 당신의 삶도 조금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글. 땡스북스 박지연
저자. 고정연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대에 입학, 유화를 전공했다. 10대에는 섭식장애로 고통 받았으나 유학 중 음식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음식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요리학교에 진학하여 푸드 코디네이터 코스를 수료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음식과 대화하고 치유하는 삶을 공부하고 있다.
그림. 이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