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경영하는 디자이너, 김봉진

 

정리. 윤유성 기자 outroom@fontclub.co.kr 

자료제공. 우아한 형제들

대표님 안녕하세요. 모르는 분이 많지 않겠지만,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우아한형제들(www.woowahan.com)의 김봉진 대표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 민족(www.smartbaedal.co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곳이에요. 현재 위치를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배달 업소를 알려주는 서비스죠. 메뉴이미지, 업소 상세정보, 이용후기 등을 제공해 편리하게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이에요. 얼마 전 6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5월에는 구글(Google) 초청으로 세계개발자대회(I/O)에도 참석합니다. (웃음) 그리고 저는 2000년도부터 시작해 만 14년 정도 웹 디자이너로 일해온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네오위즈, 이모션 등에서 경험을 쌓고 한때 인테리어 분야 창업을 했다가 한차례 실패해 보고, NHN과 플러스엑스를 거쳐 지금의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해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만들어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웹 디자이너로 활약하실 때 처음 뵙고,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하실 때 마지막으로 인사 드렸는데, 그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10년 차 디자이너가 되면 ‘나는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때 인테리어 관련 사업(봄봄하우스)을 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준비하기 시작했죠. 결국 그 일은 실패했어요. 판매하던 가구와 소품들은 예쁘고 완성도가 높았지만 문제는 제품이 비싸서 팔리지 않았다는 거죠. 그땐 몰랐어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중에 돈을 모으면 멋진 카페나 펜션을 꾸며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간판이나 메뉴판만 그럴듯하게 만든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죠. 원두 고르는 법이나 에스프레소 추출법도 모르는데 카페가 잘 될 리 없잖아요.
저도 가구의 원가, 물류비 등을 전혀 공부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팔수록 손해 보는 상황이었어요. 실패하고 많이 낙담하긴 했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NHN에 2년 정도 있었어요. 그때 많이 배우고 자극도 받았죠. NHN의 젊은 디자이너들과 UXDP 행사에 참여한 머리 좋고 감각적인 대학생들을 보면서 다시 디자인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포토샵만 잘 해서는 더 이상 성장하긴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본질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죠. 디자인 기능공처럼 클라이언트 요구에 맞춰 기계처럼 시안을 만들어내고 PSD 파일을 예쁘게 꾸미는 작업만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텍스트가 있는 책을 보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죠.

김봉진 대표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위에서부터 현대카드(2004년), 나이키(2003년), 네이버(2009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어준 ‘배달의민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신명섭, 변사범 디자이너와 함께 플러스엑스(www.plus-ex.com)를 시작했던 창업멤버에요. ‘배달의민족’ 서비스는 플러스엑스의 토이프로젝트였죠. 전략적으로 비즈니스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주변 사람들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게 되었어요. 첫 사업을 실패할 때도 느꼈지만 ‘세상은 내가 계획한대로 돌아가지 않는구나’ 싶었죠.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제 갈 길을 찾게 된 것 같아 신기했어요.

 
 

우아한형제들을 기점으로 ‘디자이너’에서 ‘경영인’으로 모드가 전환된 건 아닌가요?
제 중심은 항상 디자이너에요. 저는 스스로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정의합니다. ‘디자이너 출신’이란 표현은 과거형이잖아요. 계속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을 앞에 붙였어요. 수많은 CEO들이 경영학적으로 디자인을 논하며 ‘디자인경영’을 말하지만 미술 전공자가 경영을 이야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미 실리콘벨리에서는 경영하는 디자이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회사 가치가 2조를 넘는 에어비엔비(www.airbnb.co.kr) 대표도 디자이너이고 그루폰(www.groupon.com)을 만든 사람도 웹디자이너 출신이에요. 유투브의 공동창업자도 디자이너죠. 그쪽에선 디자이너스펀드가 만들어져 활성화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젠 감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개발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디자이너의 강점이 발현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관성, 인사정책, 커뮤니케이션 방법, 의사 결정 방법도 달라요. 예를 들어, 우아한형제들에서는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만들어요. 직원들이 원하는 회사 모습을 함께 그리고 공유하는 시스템이죠. 단순히 “우리 이렇게 해요”라는 구호를 적고 파워포인트로 보여주거나 사장님 훈시처럼 액자에 담아 걸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포스터를 만들어 사무실 곳곳에 부착해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비전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죠. 
저는 계속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디자이너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나체’라는 폰트를 만든 것도 그렇고 어렵게 만든 폰트를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생각도 회사 대표가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에요. 대기업이 아닌 이렇게 작은 조직에서 그런 일을 계획하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죠.

 
 

배달의민족의 전반적인 디자인 컨셉이나 전략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정의를 내려봐요. 책을 보면서 전략과 컨셉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공부하고 제게 맞는 방식을 찾은 거죠. 예전엔 그러지 않았어요. (웃음) 예를 들어 ‘커피’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찾고 나만의 커피를 정의 내리는 거죠. 배달 음식점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했을 때에도 ‘배달 음식’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디자인과 브랜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배달 음식’ 하면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할 때 친구들과 치킨에 맥주를 배달해 먹었던 시간, 밤 11시가 넘는 시간까지 직원들과 일하다 족발에 보쌈을 배달해 먹으며 토론을 이어가던 시간들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아, 배달 음식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구나!”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배달 음식을 검색하고 찾는 과정도 즐겁고 재미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순간부터 재미있게 만들자. 그래서 이름도 ‘배달의민족’이라고 정하고 ’21세기최첨단 찌라시’, ‘전단지백과사전’과 같은 카피들도 직접 생각해냈죠.

우아한형제들 CI, 배달의 민족 BI, 이벤트 페이지, 캐릭터 모음

전반적인 디자인은 홍대 문화를 좋아할법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삼고 키치, 패러디 등과 같은 키워드에 접목했어요. 이미 <무한도전>, <컬투쇼>와 같은 비주류 느낌의 문화 코드가 자리를 잡고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쌈지’의 디자인 느낌을 좋아해서 참고하고 메인 폰트는 윤디자인의 사춘기체로 정했죠. 사춘기체를 메인 폰트로 사용한 건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과감하게 사용했어요. 그렇게 아이덴티티가 다져졌죠. 배달의민족이 인기를 끌면서 우후죽순 사춘기체를 너무 많이 사용해 우리만의 폰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했죠. 
일반적인 브랜드들이 정중한 학생회장 느낌에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엄친아’ 스타일을 추구했다면, 우리는 박명수처럼 친근한 동네 형 느낌을 추구했습니다. 애플이나 네이버, 현대카드 등의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모두 비슷해요. 스마트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럽죠. 반면에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B급, 키치, 저속, 패러디 등의 키워드가 어울리는 영역을 선택했죠. 브랜드는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타깃도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의도된 저급 컨셉으로 전략을 짜고 움직인 셈이죠.

 
 

최근 송파로 사무실을 이전하시면서 인테리어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요. 공간에 대한 소개도 부탁 드릴게요.

제가 직접 설계하고 디자이너와 세부적인 아이디어를 나눠 공간을 꾸몄어요. 우아한형제들의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하나씩 풀어갔죠. 특징 중 하나는 대회의실 문을 모두 개방할 수 있는 폴딩 도어로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문을 모두 열면 80여 명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죠. 대회의실은 가장 낭비가 심한 공간이에요. 회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땐 거의 죽어있는 공간이죠.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땐 카페처럼 열어둘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서는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웃음) 위치 선정은 앞서 얘기한 버킷리스트에 의해 정해졌어요. 번잡한 강남 한복판 말고 공원이 옆에 있는 한적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직원들이 많았어요. 공간을 찾던 중에 마침 석촌호수를 앞에 두고 매직아일랜드와 송파나루공원이 있는 이곳을 운 좋게 찾게 되었죠. 전철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와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공원을 끼고 걸어오는 길이 좋아요. 공간 내부는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가 컨셉이에요.

우아한형제들 사옥에 대한 계획도 있나요?
사옥을 직접 설계하고 짓는 일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일 아닐까요? (웃음) 몇 년 후에 실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에요. 우아한형제들 사옥 1층과 2층에는 어린이 집을 만들고 싶어요. 사원 복지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가 만드는 어린이 집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요. 생각만해도 설렙니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공간, 아기와 엄마 그리고 선생님 사이의 정서적 교감,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모두 고려해 디자인해야 특별한 공간인만큼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사옥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꿈입니다. (웃음)

 
 

회사 운영이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고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성장’입니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봤고 이제 14년 차에 접어드는데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많은 월급과 좋은 복지 때문이 아니었어요. 죽도록 일했지만 이모션(www.emotion.co.kr)에서의 시간들이 소중한 이유는 함께 꿈을 나누며 성장했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모션은 제게 친정 같은 회사죠. 그때 지금 이루고 있는 네트워크 기반을 형성했고, 그 시절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많은 분들이 ‘김봉진’ 하면 성실한 친구로 기억해주고 있어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고, 제가 가장 많이 성장했던 시절입니다.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책값은 무제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책이어도 무관하고 같은 책을 여러 권 구입해도 되고 소설책이든 만화책이든 책 종류도 따지지 않습니다. 저는 독서경영의 폐해를 여러 번 봤거든요. 대부분 사장님이 감명 받으며 읽은 책을 직원 수만큼 구입해 나눠주고 독후감을 쓰게 하죠. 그런데 직원들 수준과 경험치와 관심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의무처럼 주어진 책은 제대로 읽지 않게 됩니다. 구성원이 성장해야 회사가 성장합니다. 포토샵 기술만으로는 디자이너가 성장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문학 책이든 심리학 책이든 다양한 지식과 사상을 접해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값 무제한 지원은 다른 디자인 회사에서도 꼭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대단합니다. 이 외에도 모시기 어려운 강사들을 섭외해 사내 교육을 실시하거나 부서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짜는 등 회사 이익이 남으면 직원 성장을 위해 쓰고 있어요.

앞서 말씀하셨지만 책도 굉장히 많이 읽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책들인가요?
최근에는 <TED 프레젠테이션>, <왜 일하는가>를 읽고 있고, <일본전산이야기>, 키케로의 <의무론>은 다시 보고 있어요. 저도 예전엔 이렇게 책을 많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림 나온 책들만 보던 전형적인 디자이너였죠. (웃음) 대학원에 들어가고 사업을 구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어요. 저는 한 번에 네댓 권씩 읽어요. 물론, 모든 책을 정독할 수는 없습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덮게 되는 책도 있죠. 
저는 읽는 책 속에서 다른 책을 찾아 읽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속에는 50권 이상의 다른 책이 담겨 있거든요. 저자도 다른 누군가의 책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책을 썼기 때문이죠. 그러다 길을 읽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책을 추천해주는 책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구입해 보고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죠. 스테디셀러는 반드시 챙겨 읽고요.

 
 

읽어보신 책 중에 추천을 해주신다면요?
저는 인문고전을 알기 쉽게 만화로 풀어준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세트>를 추천하고 싶네요. 인문학은 너무 어려운 책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돼요. 그 주제로 공부하고 논문을 서야 하는 게 아니라면 나에게 맞는 읽기 편한 요약본이나 만화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만화책으로 공부하는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내 수준에 맞춰 시작하는게 중요하죠. 그리고 나서 더 관심이 가고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주석서와 해설서, 원서의 번역서 등을 읽어도 늦지 않거든요. 시집처럼 두껍지 않게 출간된 <논어의 말>, <니체의 말> 시리즈도 추천합니다. 독자들의 UX를 고려한 책이에요. 물론, 정독하면 더욱 좋겠지만 두꺼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제대로 다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인문고전을 어렵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배달의 민족 한나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전용 서체를 디자인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어떤 계기로 서체를 개발하게 되었나요?
전용 서체와 인연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2004년도에 현대카드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을 할 때 제가 PM이었어요. 그땐 현대카드가 왜 전용서체를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10년 가까이 지나 생각해보니 “아! 이게 답이었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NHN에 있을 때 나눔서체를 담당했던 팀이 바로 옆에 있었어요. 그때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글꼴이 어떤 힘을 갖는지 알게 되었죠. 글꼴의 힘을 알게 되면서 항상 폰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리고 앞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배달의민족 성공 이후에 유사한 디자인 사례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우리만의 서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구상했던 디자인이 어떤 느낌인지 보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서문을 그려보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자이너들과 한 글자 한 글자 조합해 한나체를 만들어 갔어요. 4개월 정도 작업하니 거의 완성이 되더군요. 그렇게 만든 글자를 전문 폰트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나머지 글자를 정리하고 OTF와 TTF로 개발했습니다. 무료배포까지 6개월 정도 걸렸어요.

한나체 초기 스케치

한나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배달의민족 한나체는 우아한형제들이 보여주고 있는 키치하고 복고스러운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글꼴이에요. 초등학생이 포스터에 표어를 그려 넣은 듯한 느낌을 주는 서체죠. 마음만 앞서 똑바로 그리지 못해 미숙한 투박함이 묻어나는 게 한나체의 특징입니다. 방안자를 이용해 삐뚤빼뚤하게 그린 포스터 표어를 쓰던 유년시절 추억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본문용보다는 제목용이나 꾸밈용으로 어울릴 거에요. 폰트 디자이너가 보기에 한나체는 조형적으로 완벽한 글꼴은 아닙니다. 처음 시작할 때 디자이너들에게도 이야기했죠. “겁내지 말자. 어수룩한 맛이 매력인 폰트다.” 그렇게 디자이너들을 달래가며 작업했습니다. (웃음) 산돌고딕네오나 나눔고딕 수준에 버금가는 조형적으로 완벽한 폰트를 기획했다면 시작도 못하고 만들지도 못했을 거에요.

한나체 다운로드 페이지(http://font.woowahan.com)

윈도우용과 맥용으로 개발된 한나체

SNS를 통해 안상수 선생님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안상수 선생님의 ‘미르체’와 ‘마노체’는 안선생님의 큰아들과 작은아들 이름에서 따왔어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분의 따듯함이 느껴져 좋았어요. 서체 디자인이라는 큰 업적 중 하나에 아들 이름을 붙이신 것을 본보기로 삼아 저도 첫째 딸 이름을 따와 개발한 폰트를 ‘한나체(http://font.woowahan.com)’로 정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인 셈이죠. 두 번째 폰트 이름은 둘째 이름을 따와 ‘주아체’로 갈까 했는데요. 디자이너들에게 얘기했더니 차라리 얇은 한나체를 만들겠다고 손사래를 치더군요. (웃음) 아직 다른 폰트 개발에 대한 계획은 없습니다.

 
 

한나체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우아한형제들 서비스의 상징 서체로 사용되고 있어요. 티셔츠, 머그컵, 지우개, USB메모리, 우산, 파일, 포스트잇, 자석 등을 한나체를 이용해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나눔서체가 무료로 배포되면서 사회 전반에 굉장히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 전에는 보기 싫은 폰트들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나눔서체 덕분에 조금 정리가 되었거든요. 한나체는 조금 투박한 느낌이 강하지만 디자이너는 물론 시민 여러분들이 많이 사용한다면 사회 디자인 전반의 퀄리티를 조금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나 디자인스튜디오는 보는 눈도 있고 잘 만들어진 폰트를 구입해 사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보게 되는 전단지, 간판, 포스터를 만드는 분들은 상황이 많이 다르죠. 생활 속 디자인이 점차 더 보기 좋게 변하면 좋겠어요. 한나체를 오픈폰트라이선스(OFL)로 배포한 이유에요. 한나체 하나 만들어 놓고 말이 너무 많았나요? (웃음)

한나체를 활용한 포스터와 우아한형제들 브랜드 상품

산돌이나 윤디자인과 같은 폰트 디자인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초기에 폰트를 구입해 사용하면서 300만원 이상 투자했어요. 정식으로 폰트를 구입해 사용하는 건 옳은 일인데 매년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고 갱신해야 한다는 점은 조금 의구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폰트를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그 폰트를 기업이 정식으로 구매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폰트 사용 용도에 따른 구분과 과금차계가 어렵고 모호할 때가 있어요. 
소규모로 창업해 시작하는 기업에서는 폰트 하나를 구입해 사용하기 위해 300만원 이상 투자하긴 어렵습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기업들이 폰트를 많이 구입해서 좋은 폰트가 계속 나왔으면 하지만, 폰트를 구입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고 쉬워지면 좋겠어요. 기업 규모를 구분해 10인 이하 기업에게는 조금 저렴하게 판매하고, 50인, 100인 이상 기업에게는 그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우아한형제들의 명함이, 우리 공간이, 우리 디자인이 누군가에게 이야기 거리가 되면 좋겠어요. 단순히 “예쁘다”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우아한형제들의 명함과 공간이 어떻더라고 재미있게 전하고 싶은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재미있는 장치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우아한형제들의 문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위에 문화가 있어요. 백제와 고구려가 망해도 그들의 문화가 지금까지 남아있듯이 문화가 만들어지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자존심이 생깁니다. 그게 우아한형제들의 힘이 되겠죠. 
그리고 해외의 경영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우리도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능성을 봤어요. 오랜 시간 클라이언트 일을 받아서 2~3개월씩 용병처럼 투입되어 디자인 작업을 해왔지만 이제 호흡이 긴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지만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흔하게 접하는 서비스를 잘 만들어서 사람들이 말하는 잣대의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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