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12_<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 외

 

대표적인 영국의 출판사 펭귄 북스.

그 75년의 역사를 기념하여 선별된 75권의 책들이 그 속 이야기를 우리 앞에 털어 놓는다. 펭귄 북스는 그들만의 정체성과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꾸준히 좋은 책들을 출간해왔다. 그리하여 이들은 독자들과의 관계에서 두터운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펭귄의 훌륭한 커버 아트들을 들어올리며 ‘역시 펭귄이야!’라고 말하지만 제작 과정에 관여한 누군가는 낯빛을 달리하며 그 속사정을 발설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독자들은 책이 출판하기까지의 수고를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책이 만들어지는 현장 속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관람하는 것은 꽤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더욱이 출판 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지녔거나 혹은 작업자의 위치에 종사하는 자라면 그들의 진술에 동화되기 더욱 쉬울 것이다. 이 책은 펭귄의 메이킹 필름이나 다름 없으며 결국 우리가 가장 궁금했었던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의 발행인과 편집자라면 누구나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의 끝도 없는 한탄, 즉 자기가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을 사방팔방에서 에워싼 미개인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한탄을 듣는 데에 익숙하기 마련이다. 또한 발행인과 편집자라면 누구나 저자의 불평, 즉 디자이너는 아예 원고를 읽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고, 이 불쾌한 커버 때문에 자칫 저자로서의 경력이 매장당할 것이 확실하다는 불평을 듣는 데에도 익숙해진다. 이런 한탄과 불평을 듣고 나면 이 불쌍한 편집자와 발행인은 부디 양쪽 모두에게 좋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조심조심 인도해 나가야 한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성공을 불러온다. 덕분에 책 판매량도 크게 늘어난다. 물론 이론상으로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이다.” – 19쪽(서문-폴 버클리)

 
 

이 책은 공통된 한 권의 도서에 관계한 저자,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등 모두의 진술을 모두 모았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늘 결과물로 평가 받는 그들에게 최후 진술권이 발효된 순간, 이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토로할까?

 
 

“벌거벗은 여자도 안되고, 제임스 본드도 안되고. 정말 난감했다. 미국 펭귄에서는 나더러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커버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그들은 내 아이디어에 충분히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저자의 저작권 상속자 쪽에서는 벌거벗은 여자도 안되고, 제임스 본드도 안된다는 요청을 해왔다. (중략) 우리는 집사람의 도움을 받아 머리와 메이크업을 한 다음, 28제곱미터의 내 아파트 겸 사진 스튜디오에서 두 명의 모델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또 우리는 친구 한 명을 악당 르 시프르 역할로 삼아 촬영했고. (중략) 그쪽에서는 좋아하지 않았다.” – 110쪽(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리치페이)

“나는 예전부터 아랍 또는 무슬림 작가들의 책커버에 등장하는 오리엔탈리즘 풍의 이미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편이었다. 따라서 내 소설만큼은 엉터리 동양 풍 폰트라든지, 화장실 타일 같은 기하학적 디자인이 나오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출판사에서 나한테 보여준 첫 번째 커버는 아름다운 폰트에 대담하고도 생생한 색깔이 돋보였고, 내 손발이 오그라들 만한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주인공 니달리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녀가 베일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베일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 240쪽(저자의 이야기-란다 자라)

 
 

이 책은 각자의 입장은 물론 그 동안의 펭귄 아트워크를 감상하기에도 좋다.

더불어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안들의 패전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유들로 단계의 일부가 되어버린 비운의 B컷들을 감상하는 일도 잊지 말자. 특히나 책의 펼침면을 한데 모아 시원하게 구경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글. 땡스북스 김정연

저자. 폴버클리
폴 버클리는 펭귄의 총괄 부사장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유능한 디자이너들, 아트 디렉터들과 이루어진 팀을 이끌면서 회사 내의 여러 임프린트 -펭귄, 바이킹, 펭귄 프레스, 리버헤드, 패멀라 도먼 북스, 포트폴리오, 센티넬, 커런트- 의 포장 업무를 감독하고 있다. 탁월한 디자인과 뛰어난 아트 디렉션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데 일조했으며, 수백 회에 달하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미국 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종종 강연 초청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그리고 그의 팀원들이 만든 작품은 매년 주요 디자인 연감에 등장하며, 나아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서점에도 등장한다. 폴은 브루클린에서 부인 잉수 리우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녀 역시 W. W. 노턴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종종 몇 시간씩이나 출판에 관해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상대방의 퇴짜 맞은 커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척해 준다.

이 시대 진정한 보헤미안 예술가의 고백 
자유로운 인간 정신으로 시대를 여는 이야기

 
 

이 책의 제목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겪은 한 가지 일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1967년 봄, 두 사람이 워싱턴스퀘어 공원에 놀러 갔을 때, 어느 노부인이 이들을 보고 ‘예술가’라며 남편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하지만, 그는 부인의 말을 이렇게 일축한다. “걔넨 그냥 애들일 뿐이야(They’re just kids).” 이 일화처럼 당시 패티와 로버트는 완전히 무명 커플에 시쳇말로 ‘루저’였지만, 이들은 각자의 작업에 매진하며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에 조금씩 다가선다.

 
 

미술관 입장권을 살 돈이 없어서 한 명이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고, 코니아일랜드에 놀러 가서도 핫도그 하나밖에 살 돈이 없어 나눠 먹는 궁색한 처지였지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채 고군분투했다. 이후 뮤지션으로, 사진작가로 성장한 이들은 협업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패티 스미스의 첫 앨범 <호시스> 앨범 커버를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업에서 로버트는 검은 양복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패티에게서 미적 아우라를 풍기는 중성적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저의 글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타인과 다른 면이 있더라도 그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좇을 수 있는 강한 의지와 내면을 갖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1960년대를 수놓았던 히피들의 혁명적인 외침이 시들해진 1970년대에도 새로운 문화를 여는 실험은 뉴욕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CBGB가 대표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룹 텔레비전과 레이먼즈 등이 펑크 록을 실험하며 인디 뮤지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뮤지션으로 성장한 패티 스미스는 CBGB를 비롯한 당대 뉴욕 예술의 실험적 공간들과, 당대 예술가들과의 일화를 기억의 창고를 열어 생생히 전한다.

앤디 워홀이 출입하던 캔자스시티 맥스 바는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과 예술가 들의 집합소로, 에디 세지윅을 비롯한 앤디 워홀의 뮤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첼시 호텔의 엘 키호테 바는 재니스 조플린, 앨런 긴스버그, 살바도르 달리 등이 드나들던 동시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패티 스미스는 이곳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담아 묘사한다. 한낱 가난한 서점 직원에 불과했던 자신이 문화적 세례를 받으며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던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외에도 지미 헨드릭스가 만든 스튜디오 일렉트릭 레이디에서 녹음한 일이며, 랭보를 기리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수전 손탁이 참석한 이야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존 매켄드리의 로버트 메이플소프에 대한 후원 등 패티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문화계 인사들의 행보가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당대 뉴욕을 회상할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추억이 가득한 이 책에서 독자들은 1960~70년대 예술적 실험으로 가득했던 뉴욕의 문화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

 
 

“둘 다 일을 나가느라 바쁜 데다 콘서트를 보거나 영화를 보러 갈 형편이 안 됐다. 앨범을 사는 것도 힘들어, 있는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다. 엘리노어 스테버가 부른 <마담 버터플라이>, 존 콜트레인의 <러브 수프림>, 롤링스톤스의 <비트윈 더 버튼스>, 조앤 바에즈, 밥 딜런의 <블론드 온 블론드>를 주구장창 들었다. 로버트는 바닐라 퍼지 밴드나 팀 버클리, 팀 하딘 같은 뮤지션을 알려주었고, 그의 <히스토리 오브 모타운>은 우리 둘이 사랑을 속삭이는 밤에 배경음악이 되어주곤 했다.” – 66쪽

“로버트의 작품을 가만 보면 그의 피사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성기를 꺼내 놨어, 미안해, 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길 바랐다. 로버트는 자기 모델이 성기를 주무르는 사도 마조히즘적 성향의 남자든 우아한 상류층이든 상관없이 결과물에 기뻐하길 바랐고, 그와 소통하면서 확신을 가지길 바랐다. (중략) 왜 그런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누군가는 해야 했고, 그게 자기였을 뿐이라 답했다. 그에게는 합의하에 이뤄지는 극단적인 섹스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고, 그건 모델들이 그를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의도는 폭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었고, 그 이외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예술가로서 로버트를 가장 흥분시키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 303쪽

 
 

“6월 초, 발레리 솔라나스가 앤디 워홀을 저격했다. (중략) 그는 앤디 워홀을 상당히 좋아했고, 가장 중요한 동시대 예술가로 여겼다. 마치 영웅을 동경하듯 그를 숭배했다. 콕토나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파졸리니처럼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예술가들을 존경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존경한 사람은 은색으로 치장한 스튜디오 팩토리 안에서 인간의 미장센을 기록한 예술가, 바로 앤디 워홀이었다. 나는 앤디 워홀에 대해서 로버트와 생각이 달랐다. 그의 작품은 내가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문화를 표방했다. 그의 캠벨수프 캔 작품을 싫어했고, 전혀 공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동시대를 투사하고 모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여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예술가를 존경했다.” – 96쪽

“<호시스> 앨범 커버를 로버트가 촬영하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내 음악이라는 칼에 맞는 칼집은 로버트의 사진밖에 없었다. 어때야 한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바란 건 진실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단 하나 내가 로버트에게 요구한 건 티 하나 없이 깔끔한 셔츠를 입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략) 며칠 뒤에 그는 내게 밀착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진은 기적이야.”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날의 우리가 보인다.” – 318쪽 
 
패티 스미스는 <저스트 키즈>에서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태도로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과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꼽는다. 1960년대 말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이상향을 꿈꾸는 공동체 정신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면, 이 책은 자유로운 인간 정신과 예술에 대한 열망이 어떻게 시대를 여는가에 대한 희망의 기록이다. 이런 감수성이야말로 패티 스미스가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고 현실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게 하는(패티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에 대한 비판을 담아 <1959>라는 곡을 쓰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바르셀로나의 고용 촉구 대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원동력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느 자서전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이라든지, 자화자찬 격의 이야기가 전혀 없기에 두 예술가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는 더욱 진실하게 다가갈 것이다.

 
 

글. 아트북스 편집부

패티 스미스 Patti Smith
미국의 뮤지션. 음악 작업 외에 글쓰기, 그림 작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에 시적인 가사와 록을 결합한 센세이셔널한 음악적 시도로 명성을 얻었으며 1975년 발매한 데뷔 앨범 <호시스(Horses)>는 ‘세계의 명반 100’ 안에 들기도 했다. <글리아(Gloria)>,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작업한 <비코즈 더 나이트(Because The Night)>, <올리버스톤의 킬러> 삽입곡이기도 한 <로큰롤 니거(Rock’n’roll Nigger)> 등 많은 명곡을 남겼다. 1973년 고담 북 마트에서 열린 드로잉전을 시작으로 1978년에는 로버트 밀러 갤러리에서, 2002년에는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2008년에는 카르티에 재단의 주최로 패티 스미스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하는 기획전이 파리에서 열렸다. <제7의 천국(The Seventh Heaven)> 등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2005년에는 프랑스 문화부에서 예술문학훈장을 수여했고, 200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저스트 키즈>의 영화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하고 있다. 2011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꼽히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여성 로커의 아이콘’ ‘펑크의 대모’로 평가받는다.

박소울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다. 문학과 인문교양, 문화예술, 경제경영 등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좋은 외서를 기획, 편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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