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전자책을 말하다.4_현상과 원인 들여다보기

 

앞서 전자책 개념을 시작으로 시장의 구조적인 모습과 혁신의 가능성들을 거시적으로 짚어보았다면 이번 연재는 디지털로 컨버팅 되었거나 디지털 환경을 토대로 생성된 콘텐츠 전반을 훑어보며 이로 인해 발현된 변화의 현상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자.

글. 박윤호 포도트리 UI/UX Lab 디랙터 겸 이사

어느덧 2013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1년 365일 이라는 시간은 같지만 동일한 시간 속에서 디지털, IT의 변화는 해가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는 점이다. 그 빠른 변화의 흐름을 발 빠르게 따라가야 하고 한 수 앞의 변화를 직감으로 또는 학습의 연장으로 내다보아야 하는 노력이 현재를 살아가는 디자이너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변화의 단초가 되는 혁신은 발견 단계를 지나, 대중에게 적용되고 생활의 패턴이 바뀌기 시작해 가치 있는 편익으로 보편화 될 때 비로서 대중이 공감하는 유효한 혁신으로 인지된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것과 새로운 혁신이 맞물리며 연쇄적인 일련의 현상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로 인해 기존 시장이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기질이 만나 공존이 가능한 상태로 진화하기도 한다.

 
 

전자책의 출현과 진화양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가 불러온 혁신의 씨앗으로 인해 출판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변화의 국면을 맞이해야만 했고 지금도 변화는 계속 진행중이다. 현 시점에서 변화의 포인트를 발견하고 앞으로의 흐름을 읽어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의 현상과 원인을 읽을줄 아는 식견이다.

 

요즘 갈수록 앱북이 왜이리 많아지는지, 언제부터 웹툰을 만화책보다 자주 보게 된 것인지, 왜 책을 읽는 시간이 블로그나 카페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으로 옮겨가는지 등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현상을 잘 들여다 보면 그 속에 변화의 핵심적 본질이 숨어있다. 본질적인 원인을 안다는 것은 현상을 바꾸거나 더 강화시키는 방법을 아는 지혜 같다. 현상의 원인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스타 블로거 A씨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먼저 발행한 이유

 

앞선 연재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지금까지 양상의 대부분은 경쟁에 의한 어느 한쪽의 시장 잠식이 아닌 공존을 택해왔고 더 나아가 공존을 기반으로 사이좋게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초기 전자책 시장은 전자책으로 컨버팅된 종이책이 상품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콘텐츠의 생성과 공급원천이 제한된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책 한 권을 완성한 뒤 출간해서 시장 반응을 보기에는 실패의 리스크가 클뿐더러 웹 서비스 환경을 통해 소비자 반응을 비교적 쉽게 테스트 할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생겼다. 단적인 예로 블로그나 카페 등 사람들과 소통을 전제로 만들어진 서비스를 통해 책에 비해 현저히 분절화된 콘텐츠 단위로 피드백을 수집 하거나 수많은 팬층과 인지도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소셜의 반응 속에 콘텐츠가 제작된 탓에 트렌디하고 쉽게 대중의 공감을 일으키기 용이하다는 특징 또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요인이다. 이러한 공간을 통해 쌓인 콘텐츠들이 종이책으로 출간된 후 전자책으로 컨버팅 되는 일련의 현상은 책이라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루트와 저자풀을 확장시켜 결론적으로 출판 시장 전체의 새로운 소재 발굴과 양적 활성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긍정적인 신호는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원하는 잠재적 저자층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저작 환경의 물리적이고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콘텐츠 생성의 자연스러운 참여 유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마트 기기와 모바일 환경의 결합 속에서 새로운 잠재 저자층을 발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게 점쳐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낮아진 저작 환경 속에서 제작된 양질의 콘텐츠들이 인접한 디지털포맷으로 먼저 출간되지 않고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현상을 볼때 아직 전자책 출간과정의 한계는 남아있다.

 

이 한계는 저작 이후 첫 출간을 전자책으로 진행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정의되지 못했거나 수익화에 있어 전자책 시장이 가지는 포텐셜이 아직 덜 성숙했다는 증거로 이해할수 있다. 기존 웹에서 경험한 무료 콘텐츠 소비의 뿌리 깊은 관념이 모바일의 과도기를 넘기며 유료 소비의 가능성으로 증명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료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다는 점 또한 전자책 시장의 성숙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만화 소비의 대세로 자리잡은 웹툰

 

요즘 만화책을 사거나 ‘만화방’에 가는 횟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오히려 더 자주 다양한 종류의 만화를 보고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웹툰의 영향이 크다. ‘웹툰’은 과거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만화 콘텐츠를 연재하던 방식이 포털이라는 새로운 언론 매체와 결합하며 탄생된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만화 연재방식이다. 만화라는 특정 콘텐츠의 제작 패턴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역할을 했다.

 

기존 만화책으로는 미처 상상할수 없었던 웹툰만의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표현, 트렌디하거나 마니아적인 코드는 포털의 막강한 배포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일반 대중에게 확산 되었고 이제는 만화라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패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트랜드를 발판삼아 영화, TV, 잡지의 광고 소재로 이용이 되기도 하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거울의 역달을 담당하며 대중에게 친숙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기능 또한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처럼 무료 콘텐츠 소비 방식을 통해 웹 방문자를 늘리는 목적으로 시작된 웹툰은 최근에 도서 분야에서 수익화의 길을 찾는 중이다. 쉽게는 종이책 형태로 단행본을 발간 하는가 하면 동시에 PC와 모바일 상에서 전자책 포멧의 유료 대여 상품을 출시해서 유료화의 의미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앞서 설명한 블로그, 카페에서 생산된 콘텐츠와 그 제작 배경의 차이에 있다.

 

만화는 콘텐츠의 작은 세그먼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 대중성 때문에 일찍이 포털들은 돈을 지불하며 웹툰을 육성했고 그 과정에서 성공의 본보기가 된 다수의 스타 작가를 배출하게 된다. 목적이 어찌되었건 이러한 환경은 잠재 작가층의 폭발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택받은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독식하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중성 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 때문에 전자책 가능성을 증명해 나갈 하나의 세그먼트로 무엇보다 웹툰을 주목해보는 이유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먼저 웹툰 이전 세대의 만화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문화 코드는 오히려 대중에게서 점점 낯설어지며 예전의 향수를 간직한 무언가로 기억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문화나 특성은 진보한 것으로, 이전 것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이 여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듯 하다. 세월이 지나면 잘 나가는 웝툰의 코드와 유통방식 역시 어떤 새로운 변화의 흐름속에서 언젠가는 옅어질 것이다.

 

세상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로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이 더 많아지기 바라며, 새로운 포멧과 유통을 통한 변화만이 아닌 이전의 것들도 쉽게 적용되어 함께 유통되고 다같이 성장할수 있는 상생의 성숙한 서비스 철학이 자리 잡기를 소망해본다.

072115_0802_1.jpg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