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은 것들을 위한 디자인, 아트디렉터 이주승

 

<블링>과 <DAZED>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올해 3월부터 ‘에브리리틀씽(every.little.thing)’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주승 디자이너를 만나고 왔다. 국내 대표적인 클럽컬처 매거진과 패션 전문 매거진의 아트디렉터로 오랜 시간 일했지만, 겉 멋에 빠져있다거나 거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스튜디오 공간 곳곳을 직접 꾸미고 다듬을 정도로 취향이 확실하고 꼼꼼하다. 그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모든 작은 것들까지.

취재. 윤유성 기자 outroom@fontclub.co.kr

안녕하세요. 폰트클럽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블링>(www.thebling.co.kr)과 <데이즈드>(www.dazeddigital.co.kr) 매거진을 디자인하고 한동안 게임 회사 넥슨의 기업 디자이너로도 일했던 이주승입니다. 게임 회사 디자이너의 처우나 환경이 나쁘진 않았지만 지난 달 일과 작년 일을 비슷하게 작업해야 하는 반복 작업을 견디기 힘들어 다시 매거진 아트디렉터로 돌아갔었죠. 매거진 디자인도 매달 반복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지난 달과는 다르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함께 재미와 신선함이 공존한다는 남다른 매력이 있어요. 그러다 몇 달 전 독립해 이태원에 제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every.little.thing’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말 그대로 ‘에브리리틀씽은’은 ‘모든 작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를 통해서 작업되는 모든 디자인들이 단순히 예쁘게만 보이기 보다는 철학과 감성이 담긴 디자인으로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무심결에 소홀히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기본’을 지켜가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습니다. 에브리리틀씽에서는 디자인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하고 있어요. 매거진, 음반, 포스터, 브로셔, e-Book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에브리리틀씽 홈페이지(www.everylittlething.co.kr)

이주승 아트디렉터

독립해 스튜디오를 창업하신 계기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게임회사 넥슨과 <블링>에서 기업디자이너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저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기업에 적용되는 디자인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디자인을 저만의 사고로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과감하게 독립을 결정하게 되었죠. 또한, 의뢰 받아서 디자인 하는 작업 외에 직접 기획 과정과 디자인에 참여하여 출판과 디자인 상품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독립과 창업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걱정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나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스튜디오 창업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다행히 제가 독립을 해도 디자인을 맡겨주겠다는 고마운 클라이언트가 있어 용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제 안에 쌓이는 규칙들과 안정을 추구하려는 게으름을 깨고 싶었습니다. 독립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죠. 일이 많지는 않아도 밥은 먹고 살겠지, 우연을 통해 얻게 되는 기쁨과 결과물이 있을 수 있으니 뛰쳐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잘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웃음)

 
 

이태원으로 스튜디오 공간을 정한 이유가 있나요?


<블링> 사무실이 이태원 근처에 있었어요. 그때 이태원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죠. 다른 곳과는 다르게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공존한다는 느낌이 좋아요. 그래서 항상 새롭고 신선합니다. 다른 곳에 비해 이태원이 도시 개발에서 약간 벗어나있어요.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기존 한국식 주택을 외국인들이 개조해 사용하면서 독특한 분위기의 건축물도 생겨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곳이죠. 일과 관련해서 충무로 쪽으로 나갈 일이 많은데 거리도 가까운 편이고, 강남 쪽도 한남대교만 넘어가면 닿을 수 있어 지리적으로 적당한 위치에요.

<DAZED> 매거진 디자인

NC soft 신입사원 선물 디자인(패키지, 브로셔 등)

NEXON Annual Report

<블링>과 <데이즈드> 등 색이 명확하고 개성이 강한 매거진 디자인 작업을 하셨는데요. 각각의 잡지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블링>과 <데지즈드>는 성향이 완전히 다른 매거진이에요. <블링>은 서브컬쳐 위주로 매달 스페셜 테마를 갖고 새로운 이슈나 아이템들을 독특한 컨셉과 다양한 아이디어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힘을 빼고 디자인하는 것이 주된 원칙이죠. 반면에 <데이즈드>는 책 한 권이 새로운 이슈로 진행되다 보니 디자인디렉팅을 넘어서 사진이나 전체 레이아웃을 모두 고민함과 동시에 힘을 많이 주는 디자인을 원칙으로 작업했어요. 도비라 페이지나 메인 섹션 이외에도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에 더 공을 들여서 디자인했죠. 에브리리틀씽의 의미와 통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마무리한 작업을 소개해주세요.


삼성의 <딜라이트 어반그라운드 페스티벌(2012 D’LIGHT URBANGROUND)> 포스터 디자인을 진행했고, 얼마 전에 창간된 <캠퍼스10>이라는 캠퍼스 매거진 디자인을 아트디렉팅 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 모두 신경 쓰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을 찾아 파고들어가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플(Apple) 제품을 좋아해 많이 사용하는데요. 겉으로 들어나진 않지만 사용자를 배려해 만들어 놓은 기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될 때 ‘이 기업이 나를 굉장히 배려해주고 있구나!’라는 좋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제 디자인도 그런 경험을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2 D’LIGHT URBANGROUND> 포스터 디자인

<CAMPUS10> 매거진 디자인

김창완밴드 음반 디자인 작업도 눈에 띄는데요. 

겪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김창완 선생님은 다방면으로 굉장히 박식한 분이에요. 디자인 작업을 위해 여러 뮤지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음악과 미술, 음악과 디자인의 연결지점을 보게 됩니다. 음악적 컬러와 메시지를 그림처럼 명료하게 그려내는 뮤지션을 보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저는 그런 생각과 그림을 디자인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김창완 밴드의 분홍굴착기 작업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굴착기나 공사장과 잘 어울리는 투박한 느낌의 스테실 작업 느낌이 나도록 음반 디자인을 하면서 한글과 영문 폰트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죠.

김창완밴드 앨범을 위한 일러스트와 폰트 디자인 작업

폰트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Helvetica’와 ‘Estilo’를 가장 많이 사용했어요. 헬베티카는 특별한 디자인 재료가 없이도 폰트만으로 디자인을 정리해주고 완성할 수 있는 강점이 있죠. 음식에 조금만 넣어도 맛을 내는데 큰 도움을 주는 ‘소금’과 같은 존재에요. 에스틸로는 한동안 <데이즈드>와 기타 디자인 작업에 많이 사용해온 서체에요. 다양하게 변형되는 스타일로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되는 ‘설탕’ 같은 폰트죠.

 

글꼴 선정을 비롯해 한글 폰트와 라틴어 폰트의 조화, 크기나 자간 등을 결정하게 되는 기준이나 가이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꼴 선정에 있어서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본문 폰트는 고딕 계열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특별하게 폰트 작업에 규칙을 두는 것은 영문폰트와 한글폰트 혼용으로 사용했을 경우 높낮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베이스라인을 조정해 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글 폰트에 들어가 있는 영문 폰트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영문 폰트는 별도로 지정해 정리하며 작업하는 편입니다.

 
 

본문을 제외한 타이틀 디자인에서는 주로 라틴 알파벳 폰트 활용 빈도가 높아 보이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첫째로는 한글 폰트가 영문과 다르게 받침이 있어 애매한 공간이 많이 생기게 되어 한글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로는 글 내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서체로 전달하도록 디자인하는데 한글은 고딕과 명조계열을 피해서 디자인 하기에는 영문만큼 다양성이 떨어지죠. 간혹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을 하게 되면 기존 폰트 스타일을 해체하고 폰트를 변형해 타이틀로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캘리그라피로 작업하곤 합니다. 적용범위는 타이틀보다는 비주얼 작업이나 도비라 페이지가 되겠죠. 하지만 이전에 <데이즈드> 34호에서 한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기사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영문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76호. 스트리트 문화를 소개하는 페이지에 실제로 그래피티 작업을 진행하여 소스로 활용했다.

<dazed> 25호. 신발끈을 활용하여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했다

<dazed> 22호. 테이프를 이용해 타이포그라피 작업을 했다.

<dazed> 창간 포스터 캘리그라피 작업.

한글을 활용해 만든 타이포그래피 작품들. 제목은 알파벳을 해체해 한글로 표현했다.

직접 폰트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요즘 들어 다양한 한글폰트들을 접하게 되는데 외국의 유명한 폰트들 같이 명조나 고딕계열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되 빈티지한 형태나 타이틀용 폰트를 작업해보고 싶어요. 현재는 앞서 말씀 드린 스텐실 느낌을 주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 작업을 폰트로 만들어 사용하고 싶긴 합니다.

 
 

디자인 작업에 어떤 것들이 도움을 주나요?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시간을 담아내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사진을 많이 찍고 보는 그 자체에서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아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나 사이트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요즘 관심 갖고 보는 잇츠나이스댓(www.itsnicethat.com)이라는 웹사이트를 추천합니다. 다양한 작품들과 내용을 접할 수 있어요. 특이한 점은 오프라인 기반에서 웹 기반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웹 기반의 컨텐츠를 선별해 오프라인 매거진으로 만든다는 점이에요. 제가 모으고 있는 잡지 중 하나에요.

디자인, 사진, 일러스트, 영상 등 독창적인 작품들로 가득한 잇츠나이스댓(www.itsnicethat.com)

마지막으로 에리브리틀씽의 계획은요?

얼마 전 창간된 <캠퍼스10>(www.campus10.co.kr)이 기존 캠퍼스 매거진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리잡는데 제 디자인이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신인가수 위주로 음반 디자인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실험적인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생각입니다.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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