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역사 100년, 진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_2.현대 간판디자인

<간판 역사 100년전>이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개관 4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되어 선보였다. 전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한 달간 진행되었다. 제 1파트에서는 60여장의 사진 속에 나타난 초기 간판의 모습을, 제 2파트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실제 간판 약 170여종이 전시되었다. 제 3파트에서는 서울의 대표 거리 다섯 곳의 거리 간판 풍경전을, 제 4파트에서는 전문디자이너들이 참여한 10대 도시 간판디자인 초대전이 펼쳐졌다. 1960년대 거리를 재현해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꾸며지기도 했다. 전시는 마무리되었지만, 박물관 측 협조로 폰트클럽에 전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진행. 윤유성 기자 outroom@fontclub.co.kr
자료 출처 및 제공. <간판역사100년전_ 간판, 눈뜨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www.designmuseum.or.kr)

10대 도시를 디자인하다


간판은 단순한 상업적 목적을 벗어나 현대 도시 공공디자인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각 지방의 특색에 맞는 간판디자인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작은 시도와 노력의 일환으로, <간판역사 100년전>에서는 현재 활동중인 디자이너 10인을 초대, 국내 대표 10대 도시를 선정하여 각 도시 컨셉 및 슬로건에 맞는 아름다운 한글 간판을 디자인해 선보였다. 참고로, 10대 도시(서울, 부산, 인천, 대전, 대구, 전주, 경주, 광주, 울산, 제주)는 인구수를 기본으로 하여, 도시의 뚜렷한 특징이 도드라지고, 국내외 관광객 유동이 많아 간판활용 및 쓰임이 많은 대표 도시로 선정되었다. 작품은 도시명 가나다 순서로 소개한다.

경주_김희준

광주_모은영

대구_이승환

대전-최일섭

부산_김재현

서울_박암종

울산_이호

인천_안병국

전주 _오민준

제주_이상현

지금 간판 하러 갑니다


간판의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상점, 상품만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점 또는 상품의 광고효과에 앞서 도시 환경의 아름다움을 도울 수 있는 미적 측면에서도 다루어져야 한다.  2012년 9월, 현재의 간판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홍대앞, 강남역, 압구정, 종로, 인사동 등 서울시내 주요 명소 다섯 군데의 간판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대학생들과 공동작업(Collaboration Project)을 진행해 선보였다. 17인의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눈에 비친 현대 도시의 간판들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지도교수ㅣ강성민 교수(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참여학생ㅣ김병기, 이상영, 한지혜, 송유진, 이종원, 홍유정, 김정환, 서예은, 권현진, 석효진, 송현 정, 정유정, 장현빈, 배진영, 조희주, 최민용, 최성호

부록_ 간판이야기 
100년 전 한반도에 펼쳐진 석유 전쟁

 

저녁이 되면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만난다. 이 어두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불을 피우는 것인데 오늘날에는 전기가 있어 스위치만 올리면 불을 밝힐 수 있으나 예전에는 호롱에 기름을 붓고 불을 밝혔다. 자연산 기름은 얻기도 힘들거니와 밝기도 그리 밝지 않아 매우 불편하였다. 그래서 석유가 수입되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판매된 석유는 여러 가지였다.

런던표 쉘 석유 간판
1920년대 l 법랑 l 45.4×50.4cm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소장
런던표 쉘 석유광고용 간판으로서 조개모양을 한 특이한 간판이다. 영국의 쉘 석유회사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공급하는 대리점에 배포한 간판으로서 미국의 텍사코 T 회사의 석유제품과 경쟁을 벌였던 회사의 간판이다.

텍사코 별표 간판
1920년대 l 법랑 l 44.5×34.6cm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소장
미국 텍사코 별표 석유광고용 대리점 간판으로서 한쪽 면을 빼서 벽에 붙일 수 있게 제작되었다. 앞면은 한자와 일어로 되어 있으나 뒷면은 한글을 넣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석유 간판이 여러 개 남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적인 판매를 했다는 것이고, 또한 많은 곳에서 판매를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익성도 높았다고 봐야 한다. 석유회사가 여럿 들어와 각축을 벌였다. 지금도 있는 텍사코, 쉘 석유간판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자 국치를 통분해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한 황현(黃玹: 1855~910). 그의 한말 풍운사를 담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석유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서양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바닷 속에서 난다고도 하고, 혹은 석탄으로 만든다고도 하고, 혹은 돌을 삶아서 그 물을 받은 것이라고도 하여 그 설이 다르다.(중략) 우리나라에서는 경진년 이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냄새가 심했으나, 한 홉이면 열흘을 밝힐 수 있었다.”

 

이 기록을 토대로 하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사용된 때는 고종 17년, 경진년인 1880년이다. 개화파 인사들이 일본에 건너가 서양 문물을 구경하다 석유와 석유 램프, 성냥 등을 갖고 귀국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은 태동했다. 석유가 들어오기 전 국내에서는 식물성 원료인 아주까리나 송진을 이용해 등잔불을 밝혔다. 조미 수교 2년 뒤인 1884년 미국에서 석유가 대량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1890~1900년대에는 광목류와 함께 국내 수입 1~2위를 다퉜다.

 

개화기 때 미국 공사 알렌은 1898년 서울시 가로등에 석유를 사용해 불을 밝혔다고 기록했다. 당시 국내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아 등유, 휘발유 등의 구분 없이 ‘석유’라는 명칭을 썼다. 1897년 알렌은 우리 정부로부터 석유와 관련된 이권을 대거 따냈으며, 미국 최대 석유회사였던 스탠다드오일에 ‘솔표’라는 상호를 붙여 석유를 독점 판매했다. 스탠다드오일은 경성과 인천 등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던 미국인 타운센트에게 국내 유일의 대리점 영업권을 주었으며 그는 인천에 ‘순신창’이라는 석유 판매 대리점을 내 큰돈을 벌었다. 스탠다드오일은 1920년대까지 국내 석유시장을 독점했다.

승리표 SOCONY 석유광고 간판
1920년대 l 법랑 l 지름 45cm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소장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에서 발매한 승리표 SOCONY 석유 광고용 간판이다. 디자인이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 디자인하였다. SOCONY라는 의미는 뉴욕에 있는 스탠다드 석유회사(Standard Oil Co. of New York)라는 단어의 이니셜이다.

미국 텍사코와 영국 셸(Shell)이 들어오면서 이미 들어와 영업을 하고 있던 스탠다드오일과 치열한 3파전이 벌어졌다. 당시 스탠다드오일은 승리표, 텍사코는 별표, 셸은 조개표라는 브랜드를 달고 영업했다. 1935년 일본에서도 조선석유회사를 설립하고, 30만 톤(6000배럴) 규모의 원산 정유공장을 짓고 미국으로부터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후 판매하였다. 당시 판매를 대행한 업체가 미스비시상사회사였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치열한 석유전쟁이 이 한반도에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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