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역사 100년, 진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_1.근대 간판디자인

<간판 역사 100년전>이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개관 4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되어 선보였다. 전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한 달간 진행되었다. 제 1파트에서는 60여장의 사진 속에 나타난 초기 간판의 모습을, 제 2파트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실제 간판 약 170여종이 전시되었다. 제 3파트에서는 서울의 대표 거리 다섯 곳의 거리 간판 풍경전을, 제 4파트에서는 전문디자이너들이 참여한 10대 도시 간판디자인 초대전이 펼쳐졌다. 1960년대 거리를 재현해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꾸며지기도 했다. 전시는 마무리되었지만, 박물관 측 협조로 폰트클럽에 전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진행. 윤유성 기자 outroom@fontclub.co.kr
자료 출처 및 제공. <간판역사100년전_ 간판, 눈뜨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www.designmuseum.or.kr)


한국 간판의 시초는 술과 주막이 등장했던 삼국시대 또는 천하대장군(이정표 기능)이 생겨난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문헌상의 기록으로 고려도경 제3권 방시(坊市)에 고려개경의 시전(시장)에 대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화문에서 남쪽 대로를 따라 행랑 건물로 조성되어 있어 이러한 상업용 건물에 상호를 나타내는 방(榜)이 방문에 붙어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방의 사전적 의미는 ‘걸다, 게시하다’는 의미로 오늘날 간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 조선시대에는 일종의 주렴에 해당하는 포럼을 출입문에 드리워 주막을 표시하였고, 또 추녀 끝에 등롱을 매달고 거기에 ‘주(酒)’자를 써넣어 간판을 대신하였다. 즉, 주막이나 객주집 문 앞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남포등을 고정시킨 장명등을 설치하여 거기에 ‘주’자나 옥호를 써넣고, 밤이면 불을 켜서 영업용 간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광복이전(1900년대 초~1945년)의 간판디자인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 간판 문화가 이입되었다. 이때 ‘간판’이라는 용어부터 시작해 다양한 형태의 간판이 들어왔다. 기관, 단체는 물론 상점, 회사 등이 붓글씨로 된 입간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큰 간판의 기원 역시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된다. 조선말기 상점은 주로 간판을 걸지 않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파는 물건이 그대로 간판이 되었고, 또 시장을 통해서 물물교환을 하던 시기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후 1910년대에 서울 번화가나 각 지역 본전통에서 급격히 늘어난 상점들의 간판은 크기가 상점에 비해 크고 과시적이다. 1920년대부터 일본을 통하여 네온사인이 등장하였으나 규모도 적고 색채도 단조로운 것이었으며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입간판은 1930년대부터 널리 보급되었다.

음식점 간판 
1910년경 | 엽서 | 6.8×12.5cm

1920년대 명동의 모습 
1920년대 | 엽서 | 14.2×9.0cm

경성은행 앞 거리의 모습 
1920년경 | 엽서 | 14.2×9.0cm

광주 본전통 거리 
1920년대 | 엽서 | 14.2×9.0cm

대구 원정통 거리 
1920년대 | 엽서 | 14.2×9.0cm

부산 장수통 거리 
1920년대 | 엽서 | 14.2×9.0cm

담배 간판 1920년대 | 법랑 | 30×22.2cm
담배 간판 1920년대 | 법랑 | 45.1×33.1cm

모리나가우유 간판 1930년대 | 법랑 | 45.3×33.1cm

아사히지가다비 신발 간판 1930년대 | 법랑 | 45.2×30.6cm

술 간판 1910년대 | 법랑 | 36×30cm

인단 간판 1920년대 | 법랑 | 45.2×36cm
베로세멘트 판매점 간판 1930년대 | 법랑 | 45×36cm

자동차영업소 간판 1920년대 | 목재 | 42×29cm

나시요나루 건전지 간판 1920년대 | 법랑 | 45.2×30cm

광복이후(1945년대~2000년)의 간판디자인

 

광복 이후 표현 양식에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전용 사용운동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일본식간판 일소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팽창을 거치면서 1967년에는 네온사인 규제 해제 후 네온탑과 옥상간판이 성행하였고, 1970년대에는 강철 간판들이 플라스틱 재료로 대치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약국과 병원이나 큰 가게들은 이미 아크릴 간판이 걸었지만 작은 구멍가게도 플라스틱 재료를 쓴 것이다. 간판의 틀은 여전히 나무였지만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글씨가 볼록하게 튀어 나오도록 붙여지기도 했다.

인동연탄 1980년대경 | 철재 | 61×44.8cm

국자표 미풍 1970년대 | 철재 | 34.8×24.5cm

소금 1970년대 | 철재 | 45×36cm
샘표간장연료 1980년대경 | 철재 | 61×44.8cm

우표, 수입인지 1970년대 | 법랑 | 45×35cm
승차권판매소 1970년대 추정ㅣ철재ㅣ43.5×60.5cm

샤니케익 1970년대 추정, 1970년대 | 법랑 | 39×16.6cm, 20×7cm

로켓트 전지 1980년대 | 철재 | 35.6×50.6cm

아모레 1970년대 추정 | 철재 | 39.8×79.5cm
이발 1980년대 | 철재 | 35.6×50.6cm

안남애향청년회 현판 1960년대 추정 l 목재ㅣ28×160×2cm
회곡 정미소 현판 1970년대 추정 | 목재ㅣ28×120×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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