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디자이너.3_<두 남자의 집 짓기> 외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의 여행을 꿈꾸고 있는가? 여행이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뿐이라면 금세 잊히겠지만 여행 중 스며들던 음악, 흔들렸던 마음, 떠올랐던 사람이 있기에 여행의 추억이 오랫동안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리라. 비사감과 소년장사가 교토에서 걸었던 길들과 고베에서 만난 맛있는 커피, 나라에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사뿐사뿐 교토, 살랑살랑 고베, 소곤소곤 나라>와 함께 여러분에게도 멋진 여행이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행 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드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7월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여름휴가 말고는 여행의 기회를 만들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휴가지의 선택의 단지 3박4일 혹은 4박5일 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잘 다녀온 여름휴가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일상이 힘들고 지칠 때 상큼한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이다. 올 여름 휴가지를 고민하고 있을 여러분에게 북공방 마호에서 만든 <사뿐사뿐 교토, 살랑살랑 고베, 소곤소곤 나라>를 추천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저자들의 감성으로 신중하게 고른 숍들과 코스다. 여행을 준비하며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많은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백과사전식 가이드북의 다양한 정보도 물론 요긴하지만 누군가 나와 감성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검증해 준 정보는 좀 더 안심이 되고 처음 도착한 여행지에서 여유를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행은 연애다. 이성과의 첫 만남이 어색하고 쑥스럽듯 여행 첫날은 약간의 긴장과 즐거워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낯선 풍경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고 싶은 희망이 유쾌하게 버무려진다. 그러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면 두 사람이 한결 가까워져 편안하게 연애를 즐기듯 ‘나는 원래 이래. 난 이런 걸 좋아해’하며 여행을 즐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 가듯 거리를 걸으며 도시가 숨겨 놓은 비밀(찾는 사람 각자만이 아는 거겠지만)을 하나씩 알아 간다.” – 79쪽

“실눈으로 흘끗 본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눈동자가 빛나고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머물고 있는 데다 올리브그린과 네이비블루가 들어간 목도리와 같은 올리브그린색의 털모자가 근사하게 어울린다. 그녀는 예쁜게 아니라 아름답다. 영악하지 않고 영리할 것 같고, 타인을 찌르는 솔직함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정직함을 지녔을 것 같다.” – 87쪽

“교토의 아침은 이다노커피의 향기로 시작된다’라는 말이 떠올라 이다노 커피에 가기로 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니 사람이 있어봐야 얼마나 많으랴 싶었다. 그런데 왠걸. 역시 줄을 서야 했다. 흘끗흘끗 안쪽을 엿보니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넓은 홀을 오가며 서빙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들이 앉은 테이블, 희끗희끗 서리가 앉기 시작한 중년 신사가 홀로 앉아 신문을 보는 테이블, 어린아이와 젊은 부부와 노년의 부부 삼대가 둘러앉은 테이블이 있다. 교토의 아침은 이노다커피의 향기로 시작된다는 말이 생긴 까닭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 105쪽

고토부키빌딩 
“만약 너와 함께 교토를 여행할 수 있다면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야. 너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는 서점이 있고, 가끔 나를 놀라게 하는 너처럼 기발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 갤러리가 있고, 너와 함께 보고 싶은 상냥한 창밖 풍경이 기다리는 곳이거든. 고토부키빌딩이라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에 신선한 바람이 산들, 선들 불고 있다.”

메리고라운드
“고토부키빌딩을 즐기는 또 하나의 요령. 5층에 있는 메리고라운드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가모가와의 풍경은 아는 사람만 아는 절경, 이 순간은 더욱.” – 140, 141쪽

미카게 단케 
“내가 살지 않는 어딘가에 늘 찾는 곳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설령 몇 년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너는 알은척을 하지 않지만 우리를 보는 시선에 ‘또 왔군요’하는 인사가 담겨 있다. 우리가 앉던 테이블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있다. 단골가게의 내 자리를 빼앗겼다는 우스운 심정이 된다. 활자 중독과 커피 중독을 가진 몸이 어쩌다 읽을 책을 챙겨 오지 않아 산노미 아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을 찾아가 산 문고본을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읽는다. 버터의 맛과 향기를 느끼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간다.” – 192쪽

게이분샤
“서점 문을 나서며 소년장사가 탄식하듯 한마디 내뱉는다.’역시 서점은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이야. 서점에서는 모든 걸 배울 수 있어.'”- 238쪽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산다. 그리고 선물에는 ‘나 돌아왔어’라는 말보다는 ‘돌아와서 만날 수 있는 네가 있어 참 좋아’하는 마음을 담는다. 내가 돌아가야 할 이유들, 늘 그곳에 있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 263쪽

간사이 지역을 다루는 대부분의 여행서들은 공통적으로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와 고베를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둘은 과감히 오사카를 생략하고 사뿐사뿐 살랑살랑 소곤소곤, 교토 고베 나라가 오사카와는 다른 매력으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커피집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흥미로운 물건으로 가득한 가게, 창작의지에 북돋아주는 서점, 행복한 감정에 빠져드는 만족스러운 식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책인은 소비자의 가치관에 따라 을 손에 드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글.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

비사감
대학 1학년 첫 여름방학, 방바닥을 뒹굴다 자신처럼 방바닥을 뒹굴던 일본어 초급 문법책을 들춘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인생에는 불쑥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리 잡았다.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 공부 때문에 일본어 전공으로 대학을 한 번 더 다니고,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첫발을 디뎠다. 일본 전국 여행을 꿈꾸며 스무 번이 넘는 해외여행을 전부 일본으로 다녀왔다. 그 동안 스물세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도쿄의 모습을 담은 <내가 좋아하는 도쿄 시간>을 지었다. 오늘도 책공방 마호에서 소년장사와 함께 즐거워지는 책을 만들며, 신문에 나온 일본 여행에 기사를 스크랩하며 또다시 다음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소년장사
대학 1학년 첫 여름방학, 일주일 동안의 일본 여행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며 새로운 나라들을 찾아 다녔다. 영어와 수학을 안 해도 된다는 이유로 선택한 국문과를 무사히 졸업하고 일본 문학 전문 출판사에 취직해 편집자로 일하던 어느 날 재미있는 책을 찾아오겠다며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1년 후 두 박스의 책과 함께 돌아와 비사감과 책공방 마호라는 출판사를 시작했고, 일본 유학 시절 경험을 담은 <28살 그녀의 도쿄레시피>와 비사감과 함께한 도쿄 여행으로 <내가 좋아하는 도쿄 시간>을 지었다. 오늘도 책공방 마호에서 비사감과 함께 행복해지는 책을 만들며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검색하거나 숙소를 찾아보면서 또다시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파트의 인기가 시들한 요즘, 마당이 있는 주택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정말 꿈으로만 남을 수 있는 마당 딸린 주택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가 마치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를 집에 들이는 것처럼 한 때의 유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꿈꾸는 디지털 시대의 반향(反響)이랄까?

 
 

주택에서 살았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파트의 규격화된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관리비만 내면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걷는 길은 늘 정리되어 있으며, 잡상인을 막아줄 경비아저씨까지. 반면 주택은 철저히 개인 공간이다. 각종 세금은 물론 쓰레기 수거와 집주변까지 신경 써야 한다. 경비아저씨도 없다(택배를 받아줄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트보다 비싸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렇게 불편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아파트 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주택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아파트에 살면 층간 소음 때문에 음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해가 진 뒤 거실을 걸어야 할 때면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윗집은커녕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란다에 작게나마 화단을 만들었지만 마당에서 키우는 큰 나무가 늘 그립다. 살기 위한 공간인데 살기가 싫다.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모은다고 과연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살 수 있을까? 아파트처럼 이미 누군가의 설계에 맞춰 지어진 주택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주택을 짓고 살 수 있을까? 부담이 커지고 마당 딸린 주택을 포기할 때쯤 지나가는 뉴스에서’땅콩집’에 대한 정보를 보게 되고,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 <두 남자의 집 짓기>는 바로 그 땅콩집을 짓게 된 건축가와 건축전문 기자 둘의 이야기다.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으로’라는 부제만큼 아무리 저렴하게 집을 짓는다고 한들 당장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이 당장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있어 주택을 꿈이 아닌 현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직장 16년 차의 기자인 저자 구본준도 이 책처럼 결국 원하는 집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부자들만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선입견이었고, 집 짓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직접 지어보니 크지 않아도,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17쪽

“살고 싶은 집에서 사는 삶, 이 너무나 간단하고 소중한 것을 왜 그리 겁내고 미루고 포기해 왔을까.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면 그리하는 게 맞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집도 마찬가지. 살아보니 더욱 그렇다.” – 17쪽

건축 전문기자 구본준과 건축가 이현욱 두 저자의 가족이 살 집을 짓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에는 건축가 이현욱이 아파트에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짓기 전 몇 차례의 실험적인 주택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처음 집을 짓게 될 독자들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실수들을 먼저 겪고 조언하는 부분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집이 크면 클수록 좋다고? 천만에. 단독주택의 경우는 특히나 그렇지 않다. 보기에 좋은 집이 살기에 편하지 않을 수 있다. 집을 짓거나 지어진 집을 구입하려 할 때, 집의 모양새만 살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이는 재료뿐 아니라 내장재, 단열재, 구조 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봐야 한다.” – 68쪽

집을 짓는 과정을 안다는 것은 집을 지을 때뿐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사거나, 세를 얻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살아보지 않았으니 겉만 보고 집을 고르게 되는데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집을 알 수 있다. 하루 이틀 살 곳이 아닌 이상 작은 부분이라도 잘못 선택하면 오랫동안 불편을 주게 된다. 특히 냉난방에 대해서는 나 역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높은 거실은 모두의 로망이다. 건축가들도 좋아한다. 높고 시원하게 뚫린 공간, 환하게 빛나는 넓은 거실 창. 이제 따져보자. 높은 거실은 멋있는 집이 될 수는 있겠지만 편안한 집은 될 수 없다. 집에 돌아와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아늑하고 편안한 안정을 느끼고 싶다면 높은 거실은 잘못된 선택이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소용없고, 겨울에는 보일러가 소용없다. 높아서 멋있는 거실은 손님이 놀러 올 때 한번 폼 잡는 쇼에 가깝다.” – 134쪽

요즘 인테리어에 대한 책이 많이 늘었다. 사진 보는 재미도 있고 왠지 한 부분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역시 많이 보곤 한다. 반면 (에세이가 아닌) 건축에 관한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인테리어 책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다행이게도 이 책 <두 남자의 집 짓기>는 쉽게 읽힌다. 인테리어 책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집 짓기에 대한 정보를 잘 전달하고 있다. 앞으로 자기 집을 지을 사람들에게 또는 집을 살 사람들에게 주택에서 살고 있는 두 남자의 경험이 친절하게 다가온다.

글. 땡스북스 김욱 실장

구본준
건축은’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알리는 기사를 오랫동안 써왔다. 건축기자면서도 집은 특별한 사람들만 짓는 것으로 알고 아파트에서 살아오다 이현욱 소장을 만나 단독주택 땅콩집을 짓게 됐다. 이 집에서 좋은 집이란, 알맞게 작고 알맞게 여백이 있는 집이라는 걸 깨달아가며 즐겁게 살고 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갔으니 소원이던 고양이를 기르려 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대신 거북이를 기른다. 거북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글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한겨레>에서 기동취재팀장, 기획취재팀장을 거쳐 대중문화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글쟁이들>, <서른 살 직장인 책 읽기를 배우다>, 한국 전통건축을 소개하는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 등의 책을 썼다.

이현욱
가장 경제적인 집, 가장 현실적인 집을 추구하는 합리주의자 건축가. 친환경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에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에선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묘하게 혼합되어 있다고 평한다. 국내 대표적인 설계사무소 광장건축에서 실습생으로 건축을 시작해 도면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대표가 됐다. 평생 아파트에서 살다가 2007년 처음 죽전에’들고 다니는 집’모바일 하우스를 지으면서 단독주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0년 구본준 기자와 ‘도심의 아파트 전세값으로 한 달 만에 완성하는 새로운 개념의 목조주택’을 짓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지은 땅콩집으로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과 여러 언론사의 올해를 빛낸 인물, 기업혁신 부문의 상들을 받았다. 한국형 목조 단독주택이 보통 사람들의 행복한 집으로 정착되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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