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스튜디오 x 산돌구름] 디자이너라면 꼭 한 번 만나야할 서체 디자이너, 채희준

INTERVIEW. 채희준

새로움이나 트렌드를 추구하기 보다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형태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는 서체 디자이너.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글자를 만든다는 그를 만나 폰트와 폰트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초설

 

 

Q. 개인 디자이너기도 하지만 스튜디오로도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포뮬러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하고 있다. 스튜디오의 구성원은 두 명이다. 폰트를 만드는 채희준과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신건모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Q. 처음부터 폰트 디자이너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했었나?

물론 대학에서 한글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하긴 했다. 그때 지도교수가 바람체로 유명한 이용제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글자를 디자인 하는 것보다는 편집이나 그래픽 디자인 쪽에 조금 더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글 디자인까지 잘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정도만 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한글 디자인까지 잘하면 큰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서체 한 벌을 만들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다.

 

Q. 그럼 어떤 계기로 폰트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건가?

2013년 졸업을 앞두고 졸업작품으로 서체를 제작했다. 그 글자가 바로 2016년 출시된 ‘청월’이다. 이렇게 하나의 폰트를 온전히 제작해 출시까지 하고 보니, 내게 어떤 취향 같은게 생기더라. 글자 디자인에 대한 견해랄까. 나중에는 ‘나는 이런 글자가 좋아’, ‘이런 질감의 글자도 만들어보고 싶다’와 같이 생각이 확장되기 시작했고, 이런 감정들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청월 이후의 글자 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Q. 그럼 폰트 외에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건가?

청월을 출시하고 나서 독립적으로 활자를 제작하는 행위가 정말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전력을 다했을 때 한 종의 폰트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테스트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2017년 ‘청조’의 작업이 시작된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폰트만 디자인했다. 회사를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지도 않았다. 글자를 그리는 일을 부업으로 하고 싶지 않았고, 치열하게 제작한 폰트를 통해 온전한 수익을 내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강했다. 그저 생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의 수익을 내어야만 직업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조_contents_1

 

 

Q. 마음가짐이 정말 멋진 것 같다. 가만 보면 채희준의 폰트에서도 그런 결의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상상하던 느낌과 글자의 결과물이 일치하는가다. 느낌이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감정이지만, 처음 상상했던 느낌을 정확하게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결과물의 완성도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획 단계에서 머리로 글자를 상상하던 그 아우라가 결과물에서도 느껴지는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폰트 디자이너로서 그것이 결의라면 결의일지도.

 

Q. 공개한 세 가지 폰트들은 처음의 그 느낌이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초설’이 그 막연한 느낌을 찾아내려 가장 노력한 글자가 아닐까 싶다. 글자적인 기획과 문법으로 접근했던 청월, 청조와는 다르게 초설은 오직 ‘첫눈’의 느낌을 담는 것에 집중했다. 초설이 갖고 있는 기본 구조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바탕체를 충실히 따랐지만, 세부적인 표현은 그저 추상적인 감상으로만 디자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글자적인 논법보다는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에 더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청월과 청조가 “어떤 질감으로 이 글자를 나타낼까?”를 고민했다면, 초설은 “이 글자에 온도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온도일까?”를 고민했다고 보면 된다.

 

Q. 글자에 그런 느낌을 담는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것도 한글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일까?

한글 디자인은 아직 다양한 형태를 모색중인 단계이고, 양식도 정립되지 않은 시점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조형에 대한 시도를 해볼 여지가 많은 시기다. 아무래도 이 부분이 수익을 내기도 힘들고 작업도 지루한 한글 디자인 시장에 그나마 활기를 불어넣는 지점이지 않을까? 최근 첫 작품으로 세로쓰기 전용 폰트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1,000개의 가로쓰기 폰트들 사이를 뚫고 1,001번 째 가로쓰기 폰트를 만드는 일보다 10개의 세로쓰기 폰트 중 11번 째 세로쓰기 폰트를 만드는게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의 매력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물론 한글이든 라틴이든 각자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Q. 각자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달라.

글자는 상품이기 때문에 시장성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를 찾아서 그려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폰트 디자이너는 더욱 그렇다. 폰트는 상당히 긴 시간을 요구하는 분야라서 능동적인 태도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본인이 그리고 있는 글자가 만족감이 높아야만 글자 한 벌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면 졸업전시 때문에 억지로 작업할 수도 있고,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라면 월급을 받아야 하니까 억지로 작업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글자를 그리는 디자이너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글자를 완성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두고두고 파일을 열어보고 능동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형태부터 찾아서 그려나가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계속 열어보게 될 테니까.

 

 

청월_contents_1

 

 

Q. 듣고 보니 폰트 디자이너에게는 인내와 주관이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스스로 보기엔 어떤가?

확실히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경쟁, 기한, 재촉 같은 요소들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독립적으로 폰트를 제작하기에 불리한 것 같다. 반대로 강제성이 동반되지 않고도 능동적으로 작업을 완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리한 편이고. 레터링이나 전용서체를 의뢰받아서 진행하는 것은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에 독립적으로 폰트를 작업하는 일은 작업에 대한 보상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롯이 본인의 의지로 성취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우면서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타인과 경쟁하는 일 보다는 나 자신을 이겨내는 일에 더 동기부여가 되는 편이다보니 이 일이 잘 맞는 것 같다.

 

Q. 폰트 디자인을 업으로 삼으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없나?

작업에 긴 시간이 소요되고, 폰트를 출시한다고 해서 시장의 반응이 바로 오는 것도 아니다보니 보상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점?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시선과 불안한 감정들을 삼켜내며 온전히 내 의지와 다짐으로 긴 시간을 달려야 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폰트 디자이너로서의 삶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의지로 이루어낸다는 것이야 말로 큰 장점이지 않을까? 사소한 차이를 위해 전체를 다시 수정할 배짱도, 논리적 모순이나 형태적 조악함을 인정하고 포기할 용기도, 책임감 있게 프로젝트를 완수할 끈기까지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도 큰 매력이다.

 

Q. 이야기를 들어보니 앞으로 나올 폰트들이 더욱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나 방향이 있다면?

계속해서 내가 궁금한 형태를 실험하고, 내가 갖고 싶은 글자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떠올렸던 그 느낌들, 내가 그렸던 감정들을 사용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도록 집중할 예정이다.

 

 

청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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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CLUB 에디터 황남위


 

 

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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