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편집후기 : 스티브 잡스 그리고 산돌고딕Neo

2011년 10월 5일. 전 세계인이 공통으로 기억하는 금세기 몇 안 되는 날짜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SNS에서, 그리고 전 세계 각지에서 스티브 잡스를 그리워하며 애도했다. 트위터에서는 추모의 글이 넘쳐흘렀고, 애플 매장을 비롯하여 그를 떠올릴 수 있거나 기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 입 베어 문 사과와 추모의 포스트잇이 쌓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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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한국 시각으로 2011년 10월 6일. 그날 아침을 나도 기억한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했던 터라 출근 준비가 평소보다 늦어 서두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들려온 아침 뉴스는……. 쉽게 쓰는 표현으로, 거짓말 같았다. 그전부터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던 터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급작스러웠고, 그의 팬으로서 충격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슬픔이 몰려왔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만약에 잡스가 책 출간 전에 사망하면 책은 어떻게 될까요?” 한편 잔인하지만 또 한편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결론이 갑자기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팬으로서의 슬픔은 접고, 몇 달 전부터 그의 전기를 준비해 왔던 편집자로서 난 패닉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전기를 정말로 잘 내야만 했다.

 


 

그때까지 진행된 것은 다음과 같았다.

2011년 7월 1일. 『스티브 잡스』 전반부 원고 도착.
2011년 7월 21일. 『스티브 잡스』 후반부 원고 도착.
2011년 7월 22일. 전 세계 동시 출간 일자가 11월 21일로 정해짐.
2011년 8월 10일. 공통으로 사용 허가 난 표지 이미지를 각국 출판사에 첫 공개.
2011년 8월 22일. 수정된 표지 이미지 도착.
2011년 9월 26일. 『스티브 잡스』 최종 원고 도착.

이미 숨 가쁘게 달려온 터였지만, 많은 이들이 책을 기다리고 있었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29개국의 편집자가 밤낮 없이 ‘전 세계 동시’에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고, 마음을 졸였고, 『스티브 잡스』는 변경된 출간 일자 10월 24일에 마법처럼 ‘전 세계 동시’ 출간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출간 준비를 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잡스도 늘 중요하게 여겼던 디자인이었다. 최종 결과물이 나왔을 때,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우리 모두 가슴을 쓸었지만, 의외로 그 고민의 과정은 험난했다.

일단, 『스티브 잡스』가 서점에서 경제경영 분야로 분류될 것이 문제였다. 일반론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 경제경영 분야의 도서 표지들은 대체로 제목이 크고 잘 보이게, 그리고 이미지도 분명하게, 과감한 디자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시장에서 독자들에게 어필을 하려고 하면서 시장의 법칙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담당 디자이너도 스티브 잡스가 추구하는 세련된 감각과 독자에게 분명하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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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시안부터 최종안까지의 변화

 

첫 번째 이미지는 우리가 초기에 냈던 시안 중 하나이다. 제목이 분명하게 눈에 띄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에만 충실할 뿐, 어딘가 어색하고,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잡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두 번째 이미지처럼, 당시 애플 제품에서 사용하던 애플고딕체도 시도해 보았지만, 제목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제목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제목에 쓰기 좋은 서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출간일은 점점 다가왔다. 그렇게 애간장이 타던 중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민음사와 인연이 있던, ㈜산돌커뮤니케이션에 근무하는 서체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마침 애플의 iOS5 베타 6에서 한글 전용 폰트로 채택되었던 폰트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애플의 정식 한글 서체로 채택되었지만, 당시에는 테스트 중이었던 산돌고딕네오였다. 그녀는 고맙게도 산돌고딕네오로 제목을 잡은 시안을 샘플로 보내 주었다. 위의 세 번째 이미지다. 이 시안을 받았을 때, 우리는 이제야 맞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편집부에서 서체 자문을 구하고 있을 때, 마침 담당 디자이너도 같은 생각으로 전화를 해 왔으니, 우리는 같은 순간에 정답을 깨달았던 것이다.

네 번째 이미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어판 『스티브 잡스』 표지다. 산돌고딕네오 서체를 쓰되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어떤 면에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이 정도 책 크기에서 이렇게 제목을 작게 쓰고, 책 뒷면에 카피 한 줄 쓰지 않은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표지 시안을 받아 들었을 때 분명히 깨달았다. 제목을 더 크게 말할 필요도 없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스티브 잡스의 확신에 가득한 얼굴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고, 우리는 가능한 덧붙이지 않도록 애써야 했던 것이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는 잡스의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10월 24일, 한국을 제외한 28개국 다른 출판사에서도 고민의 결과를 공개했다. 아마도 같은 시각 같은 고민을 했을 다른 나라 출판사에서 나온 『스티브 잡스』 표지는 다음과 같았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평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처음 고민했던 것처럼 제목을 분명하게 하려고 애쓴 곳도 있었고, 우리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곳도 있었다.

 

맨 왼쪽이 오리지널 판인 미국판, 그다음부터 순서대로 독일판, 프랑스판, 일본판

맨 왼쪽이 오리지널 판인 미국판, 그다음부터 순서대로 독일판, 프랑스판, 일본판

 

『스티브 잡스』를 편집하고 출간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가 IT 업계에서 디자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했듯, 우리도 잡스 덕분에 표지 디자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벌써 1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의 전기를 몇 번이나 읽으며 그를 마치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두와 함께 그의 명복을 빌고 싶다.

<출처: 전 민음사 에디터 박은경>


 

폰트정보

산돌고딕Neo
국문 폰트명          Sandoll 고딕Neo1
영문 폰트명          Sandoll GothicNeo1
디자인 디렉팅       권경석
폰트 디자인          권경석, 이도경
웨이트                  9종
출시년도               2011년
*폰트 더 알아보기  http://www.sandollcloud.com/portfolio_page/gothic-ne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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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월터 아이작슨 /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 / 2015년 10월 5일 개정판 펴냄
46변형판(113X183) / 1108쪽
값 19,800원

 

 

스티브잡스(개정판)_입체북

잡스의 사망 4주기를 맞아 나온 개정판. 작고 가벼워졌으며, (표지 사진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

 

스티브잡스(개정판)_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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