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격동고딕 그 자체? 폰트 디자이너 장수영

폰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폰트 디자이너의 에너지나 성향, 감성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하지만 이번 ‘격동고딕’만큼 폰트와 디자이너가 잘 어울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이나 TV 속에서, 지나가다 한 번쯤 봤을 법한 바로 그 폰트! ‘격동고딕’의 디자이너 장수영과 시크한 ‘단문단답’을 나눠봤다. 거, 일도 바쁜데 짧은 호흡으로 갑시다!




SBS 매직아이 포스터(좌)와 카카오톡 스티콘(우)에 사용된 격동고딕

 

격동고딕이 공중파 방송(SBS 매직아이)과 팬시상품(바른생활시리즈)을 통해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디자이너로서 기분이 어떤가?

아직 부족하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

 

격동고딕을 아는 지인도 많을 것 같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격동고딕이 제작된 지 3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멋지다, 좋다’던 반응들이 나중에는 ‘언제 출시되냐’로,지금은 ‘나오긴 하냐’로 바뀌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출시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출시되어 다행이다.

 

격동고딕이 사용된 카카오톡 스티콘 ‘바른생활 시리즈’는 꾸준히 최다 판매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본인의 폰트가 들어간 스티콘, 사용하고 있는가?

지난번 회사에서 판매 1위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스티콘을 뿌렸는데, 휴대폰이 박살 나는 바람에 몇 번 못 써봤다. 개인적으로 이모티콘을 혐오하는 성격이라 있어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산돌티움(http://tiummall.com)에서 판매중인 바른생활 표어 상품



제작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현대적인 재해석, 진지함이 묻어 날 것. 이렇게 두 가지 방향을 잡고 작업을 진행했다. 결국에는 현재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모티브가 된 서체이기 때문이다. 형태적인 재미나 감성을 자극하는 인상보다는 묵직하고 무던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격동고딕 제작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회사에서 ‘살았던’ 기억뿐이다. 회사와 학교를 병행하던 때였고, 졸업전시 준비까지 동시에 하느라 회사에서 거의 먹고 잤다. 덕분에 인턴기간 내내 꾀죄죄함을 유지했다.


격동고딕이 처음 제작된 건 3년 전이다. 그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폰트에 변화가 있다면?

글자 구조 자체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굵기나 비례 등이 조금씩 수정되었으며, 형태적으로는 곡선이 가장 많이 수정되었다. 얼마 전 납품 건이 있어서 1년여만에 원도파일을 열어봤는데 당시에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곡선이 지금 보니 너무 이상했다. 곡선의 맺음 부분이 수직으로 끊어지는 컨셉이라 원래 핸들링이 좀 어려운 설계이긴 한데, ‘내가 이랬었나?’ 싶을 정도로 괴상한 형태였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수정했다.



격동고딕 낱글자들의 모습

 

격동고딕이 판매될 때 폰트의 배경이 된 70, 80년대 물가에 맞춰 판매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작업은 혼자 했지만 회사선배들 도움도 받았고, 소유권은 회사에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체념했다. 그냥 비싸게 많이 팔려서 인센티브나 왕창 받았으면 좋겠다.


격동고딕의 가장 큰 매력이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기 비결’이란 단어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제목용 서체에 대한 요구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현재 개인작가나 폰트회사에서 출시되는 서체들만 봐도 캐릭터 있는 서체들이 많지 않나. 이 서체는 그런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격동고딕 또한 그에 편승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좀 일찍 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뿐.


격동고딕을 사용자들이 어떻게 써주면 좋을까?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용자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감자를 사서 튀겨먹을 수도 있고, 볶아먹을 수도 있고, 삶아먹을 수도 있고, 카레 만드는데 들어갈 수도 있듯이 어떤 식으로 뭘 해먹을지는 당사자 마음 아닐까? 다만 그들의 요리가 훨씬 맛있어질 수 있는 곳에 원하는 맛이 날 수 있도록 쓰였으면 좋겠다.


3년 전 졸업작품 인터뷰 댓글을 보면 폰트의 인기를 예감한 분들이 많았다. 격동고딕을 아끼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때 댓글 다신 분들이 기억이나 하실런지.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출시하게 되었습니다.개인적으로 연락주신 분들, 회사를 통해 연락주신 분들 모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격동체 시리즈 ‘격동 굴림’도 곧 출시되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돼 버린 지 4년째에 접어들면서 몸도 마음도 썩어가고 있다. 일 안에서, 작업 안에서, 술 안에서(?) 글자 자체의 즐거움을 찾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예전에 ‘디자인이라는 마을에서 쌀 농사를 시작한 새내기 농부’로 비유되었다. 개인적으로나 작업적으로나 지금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을 것 같은데?

벼농사로 비유하자면 이제 모내기가 막 끝난 단계 정도 될까. 워낙 서체 쪽이 ‘레벨 업’하기 힘든 바닥이라.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나? 어떻게 서체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어릴 때 삶의 모토는 ‘재미’였다. 재미가 있냐, 없냐가 삶의 판단기준이자 의사결정의 기준이었다.나이를 먹으면서 재미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먹고 살기 위해 재미들을 하나씩 접었다. 그리고 몇 안 남은 재미 중 하나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다. 평생의 업만큼은 재미없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이 좋아서 시각디자인과로 진학했고, 거기서 배운 것들 안에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제일 재미있는 직업을 택했다. 그렇게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사실 얼마 오진 않았다.



작년에 열린 5.18 33주년 기념전시 <그날의 훌라송>. 시대를 그대로 담은 격동고딕이 사용되었다. (출처-고은사진미술관)


새로운 것으로 인해 소멸되거나 퇴보한 아날로그적 느낌을 좋아한다고 언급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선천적인 기계 치다. 그래서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다. 책으로 보면 술술 읽히는 것도 e-book으로는 몇 줄만 읽어도 멀미가 난다. 아직도 가끔 음반을 사러 오프라인 레코드샵에 간다.


산돌커뮤니케이션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었나?

대학생 때 막연히 글꼴디자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서 필묵 아트센터에서 한글디자인 수업을 받았다. 그때 강사님이 당시 산돌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이호(현 닥터폰트 대표) 대표님이셨다.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수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 산돌에서 인턴을 뽑는다고 연락이 와서 지원했고, 그 연으로 산돌에 다니고 있다.


입사해서 처음 맡은 일은 무엇이었나?

기아자동차 브랜드서체 다국어 파생이었던 것 같다.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추상적인 기억만 남아있다.


입사 후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인상이 상당히 좋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이다. 찢어진 눈에 늘어진 수염, 껄렁한 걸음걸이에 차가운 경상도 말투까지. 첫인상을 뒤엎을 만한 반전매력 발산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도 선배들은 술 마실 때면 얘기한다. ‘내가 너보다 빨리 입사해서, 내가 너의 선배라서 다행’이라고.


맞다. 격동고딕과 비슷하게 디자이너 자체도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몇 번 안 갔는데도 대학로 가게 사장님들이 먼저 말 걸어주시는 거 보면 그런 것 같긴 하다.


인턴이었던 3년 전 본인처럼, 사내에 후배도 생겼을 것이다. 후배 디자이너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들이 20대라는 것에 한없이 부러움을 느낀다.


격동고딕이 사용된 NIKE CUP 247 포스터 (출처-안그라픽스)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꿈을 꾼다. 시간 날 때마다 서체를 가르치는 학교들을 검색하며 커리큘럼을 훑어본다. 돈이 없어서 꿈만 꾸고 있다. 그리고 영어도 못한다. 결론은 못 갈듯.


폰트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디자인과 출신에 딱히 직업은 없는 일용직 노동자?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기 때문에 하루하루 밥 벌어먹으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을 듯 하다.


진심으로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좌우명은 무엇인가?

‘굵고 길게’. 욕심이 많은 편이다. 기회비용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폰트 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각오가 궁금하다.

죽기 전에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본문용 활자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아마 한글 폰트를 디자인 하시는 분들 모두의 목표가 아닐까?

 



작업 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나 원칙이 있다면?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한 획을 그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작업을 시작하지만, 하나의 폰트가 만들어졌을 때 절대 깨지지 말아야 할 원칙은 결국 ‘오탈자’다. 글자는 ‘시각적인 예술’이기 이전에’기능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가’라는 글자가 ‘가’로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을 해도 글자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래서 조판테스트나 검수 볼 때가 제일 긴장된다. 근데 얼마 전에 실수를 하나 했다. 내가 담당이었던 일을 이어 받은 선배님이 발견해서 알려 주시더라. 그래서 이제부턴 그냥 긴장이 아니라 ‘극도로’ 긴장하기로 했다.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오래된 간판 사진을 찍으며 격동고딕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영감을 위해 요즘 하고 있는 것이 있나?

특별히 하는 건 없다. 간판, 잡지, 사인 등 주변에 있는 글자들을 평소 유심히 보는 편이다.

 

그렇다면 서체 제작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서체가 갖는 지속성이 좋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묵직하고 진정성 있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상업미술 안에서 그나마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직업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격동고딕 외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아직 릴리즈 전이라 프로젝트 명은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다. 한, 중, 미, 일 4개국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였는데 생전 처음 만져보는 툴에,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옛한글에, 생전 처음 주고받는 영어 메일에, 1년 좀 넘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평소 즐겨 쓰는 폰트가 있다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편집은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이다. 즐겨 쓰는 게 아니라, 사용을 거의 못해봤다. 이 점이 서체 디자이너들이 갖는 딜레마이기도 한 것 같다. 그 외에 관심 가진 디자이너가 있다면 ‘사이러스 하이스미스’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색다른 조형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 사람 작업을 보면서 나도 RISD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꿈을 잠시나마 꿔본 적이 있다. 학비보고 헉 소리 내며 바로 접었지만.


사이러스 하이스미스의 작품


좋아하는 서체 디자이너나 롤모델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헤르만 자프, 메튜 카터, 에릭 슈피커만 등 환갑이 넘도록 글자 가지고 씨름하시는 모든 디자이너들을 존경한다. 개인적으로 롤모델로 삼은 사람은 없다.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장수영 폰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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