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국의 웹타이포그래피 – 손글씨체와 캘리그라피의 웹디자인 활용(2)

 

글. 안병국(비주얼스토리 / 아이웹디넷 대표)

캘리그라피나 손글씨를 웹사이트 디자인에 활용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글자의 개별적인 형태나 느낌이 아닌 디자인의 전체적인 조화라 할 수 있다. 사이트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사이트를 이용하는 타깃,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의 내용에 따라 글씨의 형태나 질감, 색상이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조건적인 캘리그라피나 손글씨의 동경에서 벗어나 조화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감성적 접근만을 중요시 한 채 세부적인 디테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디자인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며 디자인의 기능을 저해 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캘리그라피나 손글씨를 활용함에 있어서 우리가 폰트를 선택하듯 전체 디자인의 콘셉트를 대변할 수 있는 글씨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글씨와 잘 쓴 글씨

 
 

캘리그라피란 대체로 먹과 붓을 이용한 서예적인 표현 방법을 일컫고 있으며, 대다수의 캘리그라피 역시 먹과 붓을 이용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캘리그라피는 한글을 쓰는 서예가 가장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것과 서예를 배우는 차이에 대해 많이 이들이 혼동을 느끼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문이나 한글이 아닌 한자를 쓰는 것은 캘리그라피일까 서예일까? 또 먹과 붓이 아닌 다른 재료를 이용하여 한자를 쓰는 것은 캘리그라피일까 서예일까? 단순히 재료나 기법만의 접근으로 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먹과 붓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캘리그라피가 될 수 있으며, 서예를 배우지 않더라도 누구나 캘리그라피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그라피이다.

 
 

서예는 주로 글자 자체만을 놓고 심미적인 부분과 조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지만 캘리그라피는 글자 자체만의 조형성이 아닌 글자의 의미가 글자의 형태나 질감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즉, 글씨 자체의 심미성이 아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느냐가 캘리그라피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기에 굳이 붓과 먹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 직접 쓴 글자라면 모든 것이 캘리그라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예에서 말하는 잘 쓴 글씨보다 콘셉트와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좋을 글씨가 좋은 캘리그라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글씨를 쓸 줄 아는 디자이너가 좋은 캘리그라퍼라 할 수 있겠다.

 
 

캘리그라피에서 주로 먹과 붓을 사용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바로 이 이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먹과 붓을 이용하게 되면 먹의 농담에 따라 다양한 질감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붓의 획에 따라 갈필처럼 거친 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한, 글자에 여러 굵기의 표현이 가능해져 다양한 메시지를 지닌 글자의 형태나 질감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용이하다. 서예에서 활용하는 먹과 붓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재료들을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캘리그라피가 될 수 있다.

 
 

특히 웹디자인에 있어 캘리그라피를 다를 때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은 어떤 디자인 분야보다 전략적인 부분을 중시하고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잘 쓴 글씨 보다는 좋은 글씨를 사용하는 디자인적 안목을 요구 받게 된다.

위 사이트는 기아자동차의 ‘morning’ 프로모션 사이트다. 여성을 타깃으로 감성적인 부분에 어필하기 위해 봄날체로 타이틀을 장식했다. 봄날체가 지닌 손글씨체로의 완성도나 심미성이 매우 높아 다른 폰트들 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효과적이고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전체적인 디자인적 조화라는 관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전체 화면의 디자인을 보면 유럽의 거리를 배경으로 자유분방한 여성들이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자동차 뷰(view) 역시 아래에서 위로 촬영된 화면을 사용해 자동차의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틀로 활용된 봄날체는 이 콘셉트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봄날체가 가진 특징은 손글씨로의 감성적인 부분도 있지만 선의 형태가 곡선적인 부분이 많고, 전체적으로 굵기가 얇기 때문에 활동적이거나 역동적인 여성의 심리를 표현하기 보다는 순수함이나 서정적인 부분에 표현하는데 더 적합한 글씨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을 백종열체로 바꿨을 때(아래)

비교를 위해 원본 타이틀을 백종열체로 바꿔 배치해 보았다. 두 그림을 보면 앞에서 말한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두 글자체 모두 잘 쓴 글씨이기는 하지만 모닝 사이트에 더 잘 어울리는 서체(손글씨)는 백종열체다. 이유는 백종열체의 경우 봄날체에 비해 곡선의 느낌보다는 직선의 느낌이 강하고 글자 굵기가 더 굵어 작지만 강한 자동차를 표현하기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두 글자 모두 감성적인 부분을 중시하고 있어 감성적인 부분만을 따진다면 두 글자 모두 좋은 글씨라 할 수 있지만, 모닝 사이트에서만큼은 전체적인 비주얼 콘셉트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백종열체가 더 적절해 보인다.

비너스 프로모션 사이트와 움직이는 드로잉 전시 프로모션 사이트에 사용된 캘리그라피는 서로 비슷한 느낌으로 쓰여 있다. 글씨만 떼어 놓고 보면 캘리그라피적인 느낌을 둘 다 잘 살린 멋스러운 글씨들이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콘셉트를 지닌 사이트라 볼 수 있다. 비너스 사이트는 여성적인 면과 여성의 신체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반면 아래 움직이는 드로잉은 붓의 터치를 강조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 사이트라 할 수 있다.

 
 

즉, 비너스 프로모션 사이트의 캘리그라피는 글씨 자체의 심미적인 부분을 봤을 때 매우 잘 쓴 글씨라 할 수 있지만 사이트의 콘셉트와 어울리는 좋은 글씨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웹디자인에 사용된 캘리그라피적인 관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처럼 1차원적으로 캘리그라피나 손글씨가 지닌 감성적인 접근만을 중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캘리그라피나 손글씨를 웹디자인에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이오페 프로모션 사이트나 LG정수기 프로모션 사이트 둘 다 단아한 여성미를 강조하기 위한 콘셉트가 강하다. 깨끗하고 기능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덴티티 색상만을 달리하고 하나는 로고로 하나는 타이틀로 은색(silver) 배경에 캘리그라피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조화’라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봤을 때 두 사이트의 글씨가 주는 완성도나 느낌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아이오페 브랜드 사이트에서는 글자들의 전체적인 과장보다는 여자이야기 부분에서 ‘여’자 부분만 세로로 길게 빼 여성의 단아한 미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LG정수기에서는 색상의 변화나 글자들의 크기 변화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굵기 변화가 모음이나 자음 단위가 아닌 모음이나 자음 그 안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아이오페 브랜드 사이트에서 사용된 캘리그라피에 비해 자연스러움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콘셉트를 비교해 봤을 때 많은 변화보다는 자연스러운 율동감을 지니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할 수 있는 캘리그라피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해피로즈바스 스토리의 경우도 캘리그라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검정색으로 처리하지 않았지만 립스틱의 색상과 질감을 활용해 젊은 여성의 느낌과 욕실에 있는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글씨 형태 역시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립스틱이이라는 질감과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굳이 캘리그라피를 표현함에 있어 먹과 붓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느낌과 디자인 콘셉트를 명확히 살린 글씨라면 좋은 캘리그라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위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특허청 사이트에 사용된 캘리그라피를 살펴보자. 글씨에서 느껴지는 필력이나 느낌이 매우 좋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모델로 하였고 발명이라는 재미적인 부분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다른 방식의 캘리그라피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손글씨를 바꿨을 때(오른쪽)

기존 특허청 사이트에 영화 <꽃피는 봄이오면>에서 타이틀로 활용되었던 캘리그라피를 실험 삼아 대입시켜 보았다. 비록 영화에 사용되었던 캘리그라피이지만 원래 사이트보다 훨씬 더 사이트의 콘셉트를 잘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글자의 긁기가 두껍고 귀엽게 느껴지는 형태를 띄고 있어 ‘아이들’이라는 요소와 ‘재미’라는 콘셉트에 더 잘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웹디자인에서 캘리그라피를 활용함에 있어 잘 쓴 글씨보다는 좋은 글씨를 선택하는 것은 마케팅이나 디자인 전략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례를 붓글씨를 활용한 캘리그라피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지만 굳이 붓글씨를 활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래 두 사례처럼 웹사이트에 적합한 캘리그라피나 손글씨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위 레모나나 컨버스 프로모션 사이트는 붓을 활용하지 않았지만 타깃이나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펜 글씨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그런데 그 어떤 붓글씨 캘리그라피 타이틀 사이트의 콘셉트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서예적인 관점이나 글씨의 잘 쓰고 못 씀의 관점에서 살펴 본다면 분명 잘 쓴 글씨는 아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못 쓴 글씨를 활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그 어떤 명필보다 좋은 글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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