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타이포 기행 – London Typography tour.3
글. 김창식 Chang Sik Kim (그래픽디자이너, 미국 산호세대 그래픽디자인학과 학과장)
#1 영국 타이포그래피 기행 London Typography Tour ③
▲ 윗줄의 사진들은 Matthew Carter의 서체 작품들이고 아랫줄은 Hamilton Wood Type & Printing Museum에서 만든 그의 서체 목각 본이다.
1959년 발행된 타이포그래피 저널 The New Mechanick Exercises에 등장한 Matthew Carter는 제2의 Eric Gill로 불릴 만큼의 세상에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꽤 유명했던 활자 세공가였던 아버지 Harry Carter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Matthew Carter는 Oxford 대학에 영문학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지루한 고전, 문학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아버지의 후원으로 타이포그래피계의 주요 인물들과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인 타이포그래피 관련 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주로 독학으로 연구하였고 마침내 196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Mergenthaler Linotype에서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Snell Roundhand, Helvetica Compressed, 그리고 Greek서체를 디자인하였다. Balliard서체는 그를 대표 하는 아름다운 서체이며 초기 그의 작업들은 주로 전통적 서체들의 부활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에 자신의 회사인 Carter & Cone 회사에서 개발한 Elephant, Mantinia, Sophia, Big Caslon, Alisal과 Walker등 다양한 서체들은 실용성보다는 좀 더 영감과 시각적 감흥을 주는 작품들이다. 그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점들은 단순한 서체디자이너가 아닌, 철학적, 심미적 접근, 그리고 문화 속에서의 타이포그래피를 논하는 통찰 능력과 박식한 인문학적 능력에서 비롯된 총제적 접근자로서의 타이포그래퍼라는 것이다. “movable type is now mutable type.”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끊임없는 서체에 대한 고민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다. Matthew Carter는 종종 서체디자이너를 두 가지 부류로 논하곤 한다: 하나는 심미적 표현주의와 개성을 중시하는 형태의 탐구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인 시각적 아름다움보다는 논리적이고 기능적이며 개념적인 면에 비중을 두는 개발자들이다.
▲ 다양한 글꼴의 실험을 구사한 Neville Brody의 작품들
1987년 정도로 기억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나는 당시에 서서히 불어오는 매킨토시 컴퓨터의 태풍을 직감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곧 다가올 타이포그래피와 출판 디자인의 대혁명적 세기말적 현상을 미쳐 짐작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서서히 하나둘씩 그 조짐의 징표가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적지 않은 수의 실험적인 디자이너들이 있었는데 Neville Brody가 바로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실험은 당시로써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전조가 되었다. 글자와 이미지의 강렬한 상관관계를 극대화하였으며 볼드하고 강렬한 타이포그래피의 힘을 표출하였다. 대부분의 그의 글꼴들은 기하학적이고 반 추상적인 미래주의적 도형을 연상시키는 마치 암호화 된 일련의 코드를 연상시켰으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많은 디지털 타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알카미스트의 암호 코드를 연상하게 하기도 했던 그의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미학은 디지털 시대로 대표되는 젊은 신세대 디자이너들에겐 가히 충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 Vaughan Oliver의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 작업들
Vaughan Oliver은 런던 남쪽의 Epsom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 중인 그래픽디자이너이다. Studios 23 Envelope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포토그라퍼인 Nigel Grierson과 함께 음반 레코드 회사 4AD에서 발행된 거의 모든 밴드들 (특별히 Cocteau Twins, Dead Can Dance, The Breeders, This Mortal Coil, Pale Saints, Pixies, and Throwing Muses)을 위한 디자인 (1982 년부터 1998년까지)을 제작하였으며, 록펑크의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신비로운 사진과 실험적 타이포그래피로 시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 좌측은 Jonathan Barnbrook이 디자인한 다양한 글꼴들이며 우측은 해학적으로 사회현상을 픽토그램화한 타입페이스 OLYMPUKES이다.
Jonathan Barnbrook은 “디자인은 변화를 주도하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힘(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초자연적인 실체이다.” 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항상 정치적 이슈나, 기업 문화, 그리고 대중 소비문화의 쟁점을 주로 다룬다.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2002년 David Bowie의 앨범 은 유명한 Priori font의 등장으로 그 만의 독특한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업을 Adbusters Magazine을 통하여 하여왔으며 Virus Fonts를 비롯하여 다수의 실험적인 디스플레이 타입 (Bastard, Bourgeois, Coma, Doublethink, Echelon, Expletive Script, Infidel, Moron, Newspeak, Olympukes, Sarcastic, Slate Machine, and Tourette)을 제작하였다.
역설적인 그래픽과 타이포그래피의 조화를 다루는 그는 시각 메시지가 같은 소셜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부분 그가 만든 타입페이스는 사각형 모듈 안에 정형화된 틀과 일정한 획의 굵기. 그리고 직각에 가까운 획의 전환에 유기적 곡선을 맛을 가미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fusion 스타일이다.
▲ 좌측은 2007년에 출간된 Barnbrook Bible의 한 스프레드 페이지이며, 우측은 ADBUSTERS COVER 디자인이다.
▲ 좌측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Jonathan Barnbrook의 작품 중에 대표적인 예로 북한의 김정일을 모티브로 한 THE LITTLE FELLOW이다. KFC 로고와의 시각적 유사성을 이용한 풍자적 작품으로 독재자의 브랜딩화에 의한 은유적 비판을 시각화하였다. 우측은 2003년 개관한 일본 동경 록본기에 위치한 예술문화 타운 Roppongi Hills의 코퍼 레이트 아이덴티티. 여섯 그루의 나무를 상징하는 원형 패턴을 중심으로 영문 이름 자소의 유사성을 활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문화 예술의 복합건물로서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포스트모던한 타이포그래피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Swansea에 있는 National Waterfront Museum을 위한 설치미술가 Gordon Young의 환경 타이포그래피 작품. 콘크리트와 그라나이트, 그리고 스테인레스 스틸로 구성한 조각 설치물은 예술과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조경을 어우르는 작 품으로 전시장 내부와 야외 공원을 이어주는 개념적이고도 물리적인 매개물이다.
▲ why not associates의 초기 프린미디어 타이포그래피 작품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회사 why not associates는 말 그대로 글로벌 디자인 회사로서 급성장하여 국가 공공단체 및 기업체 등의 클라이언트와 함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여왔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출판 및 공간 디자인 그리고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타이포그래피의 실험을 통하여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이슈를 만들어왔다.
▲ 2009년 오픈한 Crawley Library을 위한 why not associates와 설치미술가 Gordon Young이 나무에 입체적으로 표현 한 타이포그래피 설치 작업으로 유기체로서의 정보와 지식의 성장을 암시하는 의미심장 한 작품이다.
▲ Why Not Associates이 기획하고 디자인한 환경 타이포그래피
▲ 함축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런던 science museum의 로고와 1층 로비에서 2층 메인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홀의 전경
▲ 좌측: 런던 시내에서 발견한 타이포그래피와 바이너리 코드를 이용한 흥미로운 광고물. 우측: 투명인간으로 분장한 거리의 행위 예술가. 그 아래는 자전거 타기를 홍보하는 캠페인으로 자전거 안장과 심장의 시각적 유사성을 활용했음
▲ 대영박물관 1층 로비에 설치되어있는 인포메이션 사인 시스템. 전시 주제물과 일반 공공시설물 안내 사인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재질을 상황과 환경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정보전달을 이룰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 RCA의 건물 전경과 대영박물관 1층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인포메이션 사인 시스템 세부 사진
Royal Mail은 “the greatest achievements of British design”이라는 명제 하의 Jason Tozer 사진과 HGV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기념 우표시리즈를 발행했다. 직설적이면서도 강렬하고 깔금하게 정리된 포맷과 사진 그리고 레이아웃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앞으로 3회에 걸쳐 다룰 ‘현대 타이포그래피 매거진의 진수인 Baseline Magazine’, ‘글꼴 디자인 교육의 메카인 University of Reading’, 그리고 최근에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폰트전문 제작회사 중 하나인 Dalton Maag Font Foundry’를 방문하여 실시했던 워크숍을 중심으로 다룰 글의 연재에 앞서 런던 타이포그래피 기행을 통하여 영국 타이포그래피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한 학교와 스튜디오 방문을 중심으로 한 컬럼은 최근 영국 타이포그래피와 서체 디자인 현장 상황과 그들의 철학을 파헤쳐보는 대담 형식으로 게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