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타이포 기행 – London Typography tour.2

 

글. 김창식 Chang Sik Kim (그래픽디자이너, 미국 산호세대 그래픽디자인학과 학과장)


#1 영국 타이포그래피 기행 London Typography Tour ②

▲ 좌측은 Eric Gill의 일러스트와 활자, 우측은 그의 Gill Sans체의 작도 그리드를 보여 주는 원본 스케치

19세기가 영국 타이포그래피의 전성기였다면, 20세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른 유럽국가의 새로운 도약을 의미한다.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타이포그래피와 인쇄출판 분야도 주춤하게 되었는데 1910년 이후로 미국이 이 분야에 새로운 발전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Frederic William Goudy는 100여 개가 넘는 서체를 개발하였으며 Trajan과 Goudy Modern은 그 성공적이 사례로 꼽힌다. 그는 Typographica와 Ars Typographica라는 저널을 통하여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이론을 피력하였고 Elements of Lettering과 The Alphabet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Eric Gill는 또 다른 영국 서체 디자인의 전환기를 예고하는 중요한 영국을 대표하는 타입디자이너이지만 조각가, 그리고 삽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한 다재 다능한 예술인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이러한 천부적인 재능과 방대한 작업의 이면에는 그의 독특한 종교관과 다소 엽기적인 에로티시즘의 영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런던 지하철의 전용서체를 디자인한 유명한 서체디자이너 Edward Johnston의 제자로도 잘 알려졌다. 1928년에는 유명한 Gill Sans체를 완성하였고 바로 이점이 그의 서체가 자신 스승의 영향을 받은 증거로 볼 수 있다. 그의 Sans Serif체 연구의 성과물들은 후대에 다양하게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인포메이션 전반에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 새로운 서체 미학에 시발점이 되었다.

▲ 좌측은 Edward Johnston의 저술한 Writing & Illuminating, & Lettering이라는 책의 본문 중 일부. 우측은 그가 9호까지 발행했던 Imprint 잡지

세계 최초로 지하철이란 대중교통 수단을 개발 운영한 도시로서 런던은 진보적인 사고와 시스템으로 일찌감치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발전시켜왔다. 체계적인 정보디자인에 설득력 있는 광고/홍보 디자인 또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미디어 발달을 촉진했다. 특히 런던지하철(London Underground: 객차와 터널의 생김새가 마치 튜브와 같다고 하여’tube’라는 애칭으로 불리 운다.)은 대표적인 예이다. Harry Beck이 디자인한 지하철역 로고와 맵 시스템은 전 세계의 지하철 도로망 맵의 원형이 될 만큼 논리적이고 함축적인 디자인으로 정평이 있다.

▲ 현재 사용되고 있는 런던 지하철의 로고와 승강장 플랫폼에 설치되어 있는 일부 노선도

▲ 좌측 상하단의 이미지는 Edward Johnston의 런던 지하철 로고와 전용서체 스케치이며, 우측은 그 초상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Edward Johnston (1872~1944)이라는 서체디자이너가 개발한 런던 지하철의 전용서체인’Railway Type’이다. 존슨은 원래 우루과이 태생으로 청년 시절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Edinburgh의 대학에서 의학으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하지만 고대 캘리그라피 예술에 심취한 그는 전문적으로 서체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고 The Imprint라는 서체와 프린트관련 전문 잡지를 창간하고 9편을 편집, 발행하였다. 이후 Royal College of Art에서 1940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많은 후학을 지도하였다. 

우리가 Johnston 을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장식적 서체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새로운 미래 지향적 스트림라인의 san serif 서체의 유행을 예고하는 런던 지하철 아이덴티티 전용서체인”Railway type” 제작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서체는 가로와 세로 획의 긁기가 일정하며 기하학적인 단순미와 단단함이 돋보여 새로운 교통수단임 지하철에 대한 이용객들에 신뢰감을 주고 먼 거리와 이동 중에도 신속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조형적 완성도가 높은 서체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대문자와 소문자의 조합 (주로 소문자 위주로 표현된)으로 만들어진 Johnston의 교통사인 서체와는 달리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60년대 이후 대문자로만 된 사인서체 조합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문자로만 된 지명이나 문장이 가독율이나 변별력, 그리고 주목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러 다시 소문자 위주의 사인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었고, 바로 이 점이 Johnston의 선경지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Roundel’이라는 이름의 로고를 제작하였는데 이제는 영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물로서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버스 등 런던의 모든 공공 교통수단에 전부 적용되어 통일감을 주는 전반적인 시각 표준화 시스템으로 사용됨은 물론이요 예술과 문화 상품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오며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 좌측 위로부터 1923년경부터 제작된 초기 Metro Railway의 3종류의 런던 지하철 노선도로서 사실적인 지형에 근거 한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특정 구간과 밀집지역의 정보는 식별이 어렵다. 그나마 마지막 노선도는 지형물의 배경화면을 삭제함으로써 다소 간결 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측 상단의 사진은 Harry Beck이 제작한 노선도의 초기아이디어 스케치이며 아래의 사진은 최종 완성된 노선도와 그 상세도이다.

▲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연결하는 Motorway map, 우측 상단은 초기 노선도가 조금씩 수정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런던 지하철 노선도이며, 하단의 사진은 자신이 제작한 지도 앞에 서 있는 Harry Beck의 모습이다.

1913년 이전까지 런던의 대중교통은 여러 회사에서 나누어 운영을 하여왔었다. 혼돈된 운영체계와 노선표 등을 하나로 통합하는 아이덴티티 작업이 필요했다. London Transportation으로 명명된 이 회사는 더 많은 사람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도록 이미지 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런던 지하철 회사에서 엔지니어링 기술자로 일하던 Harry Beck은 1931년에 자신이 개발한 노선도를 디자인하여 수차례의 걸친 설득을 통해 마침내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노선표로서 공식적으로 사용이 시작되었고, 그 반응은 뜨거웠다. 물론, 여기에는 에드워드 존스턴의 시각 표준화 작업의 놀라운 힘이 밑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 지리정보를 그대로 시각화할 때 생기는 문제점(실제 역과 역 사이의 간격과 일정치 않은 복잡한 루트)을 해결하며 동시에 심리적으로 더 빠르고 안정감 있게 느낄 수 있게 역 간격을 일정하게 함과 동시에 모든 루트를 수직 수평 및 45도 사선으로 표현하여 지도가 한결 단순명료 해 지도록 디자인하였다.

▲ 근래에 London Subway에 도입된 새롭고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지하철 노선도의 디자인 모티브와 컨셉을 극대화하여 제작한 광고물들로 하나의 잘 만들어진 공공디자인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파워를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 초기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참신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의 지하철 및 대중교통 관련 광고물

▲ 좌측은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Sam Loman이 London Subway 노선도와 인간의 해부학적 (마치 동맥과 정맥이 혈류의 흐름의 통로인 것과 같은 이치) 유사성을 컨셉으로 만든 Under Skin이란 작품이다. 우측 상단은 심장의 시각화한 혈관도를 컨셉으로 만든 예이며, 우측 하단의 사진은 현대 실험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The Tate 갤러리를 런던 지하철의 애칭이자 미술물감 튜브를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 “Tube”를 컨셉으로 상징적인 포스터를 만들었다.

▲ Penguin books의 유명한 3단 띠형식의 시리즈 표지 디자인과 심볼로고의 스케치

영국 타이포그래피에 빼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출판사가 바로 1935년에 Allen Lane과 V.K. Krishna Menon에 의해 설립된 저가의 제작비와 최고의 콘텐츠로 승부한 문고판 paperbacks의 대명사 Penguin books이다. 세계 2차대 전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그야말로 출판 타이포그래피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출판사이다. 

Penguin books 커버는 시리즈 출판물에 새로운 유행을 일으켰다. 단순한 수평 3단으로 나뉘어진 커버는 상.하단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 칼라 (오렌지는 일반적인 픽션물, 녹색은 범죄 사건물, 고채도 붉은색은 여행과 어드벤처물, 어두운 청색은 바이오그라피, 노랑색은 잡다한 여타의 주제물, 붉은색은 드리마, 보라색은 에세이, 그리고 회색은 월드 어페어 등의 주제를 나타낸다)를 적용하였고. 흰색부분인 가운데 공간에는 책의 타이틀과 저자의 이름이 위치한다. 당시 21살의 젊은 디자이너 Edward Young에 의하여 만들어진 커버 시리즈는 Eric Gill의 sans serif체가 적용된 간결하고 명료한 디자인으로 호평 받았다. 

한편 독일에선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중심엔 Gill’s Sans Serif나 Paul Renner’s Futura 같은 간결한 Sans Serif체가 영향을 주어 다가 올 구성주의, 모튤러 시스템,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예견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은 다음에 이어질 스위스와 독일 타이포그래피 여행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 좌측은 펭귄북스의 시리즈물이며, 우측의 사진은 출판물을 이용한 홍보용 머그컵 디자인이다.

▲ Penguin Books의 75주년 기념으로 New York의 그래픽 디자이너 Amy Fleisher가 만든 해학적인 일러스트레이션

▲ 브라질의 광고대행사인 IESP의 아트디렉터이자 카피라이터인 Elias Figueiroa이 디자인 한 Penguin books의 광고물 간결한 타이포그램을 사용하여 파워풀하고 유희적인 시각 메시지가 돋보이게 만든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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